주비글마당/흙살깊은골짜기<산문>

내 영혼을 위하여

주비세상 2009. 8. 5. 15:24

내 영혼을 위하여

 

 대반열반경의 말씀 중에는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會者定離 去者必返)’는 말이 있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질 때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머니에게 주는 고통과는 달리, 남에게 어떤 고통을 주거나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홀로 죽음의 고통을 감당하며 괴로워 하다가 숨을 거둔다고 한다. 우리는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모르기 때문에 죽는다는 생각만 해도 덜컹 겁이 나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된다.

 불교에서 마음공부를 많이 한 선사(禪師)들은 흔히 사람의 죽음을 옷 갈아입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는 옷처럼, 목숨을 자기의 의지대로 쉽게 바꿀 수 있다면 죽음에 대한 무슨 두려움이 있을까? 그러나 우리 범부들에게는 죽음처럼 무서운 공포의 대상은 없다.

 사람이 죽을 때,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고통은 출생의 산고(産苦)보다 더 힘든 괴로움을 겪어야한다고 한다.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아마 또 다른 세상으로의 탄생이기에 겪어야하는 고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죽음은 이승에 대한 이별이니 그동안 함께 지낸 인연의 아쉬움에 남은 자들은 슬퍼하고 아쉬워하지만 죽은 자는 새로운 세상에 또 다른 이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엊그제, 우리 당내(堂內)뿐만 아니라 향리(鄕里)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고, 공직에서도 말단에서 관리관까지 입지전(立志傳)적인 인물로 숱한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으셨던 재종조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음을 받고 이른 아침 장지로 조문(弔問)을 떠났다.

 한 시간 남짓 달려 장지(葬地)인 평은면 오운리 5번 국도변에 차를 세웠다. 한겨울, 맑고 파란 하늘은 칼바람에 얼어붙어있었다. 서울에서 일찍 서둘렀는지 벌써 상여행렬이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찻길 건너편 과수원 길을 지나 나직한 산등성이 좁은 소나무 숲 사이로 오색 꽃상여가 하늘로 승천하듯 꼬리를 길게 끌며 천천히 오르고 있다. 걸음을 재촉하여 그 뒤를 따랐다.

 상여 인도자가 메기는 구슬픈 소리와 상여꾼들이 받는 처량한 소리, 뒤따르는 상제들의 호곡(號哭) 소리가 골짜기 가득한 초목을 흐느끼게 한다. 장지에는 장례추진위원들이 영악(靈幄)을 치고 그 옆에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있었다. 곧 설전(設奠)이 끝나고 조문을 받았다. 지친 상주의 호곡 소리는 찬바람에 점점 멀어지고, 고인의 족질(族姪)이 화선지에 붓글씨로 써서 병풍에 걸쳐 놓은 한문 만장(輓章) 한 폭이 고인의 영정을 스치며 연신 나부끼고 있다.

 ‘일찍이 나라 위해 공직(公職)에 몸을 던졌고, 시(詩)와 예(禮)에 밝아 향인(鄕人)의 추앙을 받았는데, 홀연히 저 세상으로 떠나가니 애통하여 글로써 통한의 눈물을 짓네.’

 한편에서는 산신제와 개토제(開土祭)를 올리고 둔석(窀穸)작업이 진행되었다. 이윽고 하관(下棺)이 시작되었다. 상제들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산천을 울리고, 조객들의 울먹이는 모습이 초목을 숙연하게 하니, 상여꾼들도 일손을 머뭇거리며 함께 슬퍼하였다. 성토작업을 하면서 인도자가 고인의 행장과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사설(辭說)로 메기고 받으며 달구질할 때, 산기슭을 쓸고 가는 엷은 바람은 지켜보는 조문객들의 망자(亡者)와의 아련한 추억을 일깨워주었고, 휘감아 오르는 구슬픈 조곡(弔哭)은 우리네 인생의 허망한 삶을 더욱 큰 허공으로 만들어버린다.

 지금 이 순간 육신이 땅속으로 묻히는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티끌만한 탐욕도 없고, 미세한 미움과 성화(星火)도 없을 것이다. 모두 온 몸을 텅 비우고 오직 청정한 마음으로 가신님의 영혼 곁으로 모여, 간 곳 없는 빈 하늘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묵묵히 걷다가 간혹 발을 멈추고 서서 산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 중에 고인의 한 평생 육신을 움직인 영혼이 간 곳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땅 속으로 사라지지만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가(靈駕)는 어디로 가서, 또 어떤 조건과 인연을 만나 윤회(輪廻)를 거듭하는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아니 모를 뿐이다. 다만 연세(年歲)가 지긋하신 한두 분은 나도 내 육신이 잠들 곳이라도 마련해 두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을지 몰라도, 지금까지 내 육신을 이끌어왔던 진정한 내 영혼의 앞길을 위해 걱정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오욕(五慾)을 비우는 마음공부를 부지런히 하여 내 영혼의 갈 길을 훤히 닦아가는 일이 지금 이 시각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올 땐 어디서 왔는지 몰라도 갈 땐 어디로 가는지 알고나 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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