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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虛張聲勢(허장성세)

이 말은 '허세를 부리고 소문을 내어 기세를 떨친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힘이나 실력이 없으면서도 있는 척하며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이 사자성어는 중국의 역사서《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 등 고대 군사 전략과 역사 기록에서 유래했다. 고대 중국의 전쟁터에서는 군대의 수가 실제보다 많아 보이게 만들어 적군에게 겁을 주는 유인 및 심리전 전략을 자주 사용했다. 실제 병력은 수천 명에 불과하지만, 밤에 횃불을 수만 개 켜두거나 깃발을 수없이 꽂아 놓아 적이 보기에 대군이 몰려오는 것처럼 위장했다. 말 뒤에 나뭇가지를 매달아 달리게 함으로써 엄청난 흙먼지를 일으키고, 나팔과 북소리를 요란하게 울려 대군이 이동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실제 실속(虛)은 없지만, 목소리(聲)..

309.進退維谷(진퇴유곡)

이 말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궁지에 빠진 상태'를 뜻한다. 중국의 유교 경전인《시경(詩經)》에서 유래했다.《시경(詩經)》 대아(大雅)의〈상유(桑柔)〉라는 시에서 처음 등장한다. 人亦有言, 進退維谷(이역유곡 진퇴유곡) (사람들 말에 이르기를, 나아가도 물러서도 오직 막힐 뿐이로다.) 이 시는 주나라 정왕(定王) 때의 사대부였던 예량(芮良)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주나라는 왕의 폭정과 조정의 간신들로 인해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예량은 나라의 도덕과 질서가 무너지고 올바른 선비들이 설 자리를 잃은 절망적인 정치적 상황을 탄식하며 이 시를 지었다. 관직에 나아가서 왕에게 간언을 하자니 목숨이 위험하고, 그렇다고 관직에서 물러나 홀로 벼슬을 버리자니 나라와 백성이 걱..

308.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

이 말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뜻이다. 사람이 재물에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불교의 작자 미상인 선시(禪詩)〈부운(浮雲)〉에서 유래한 구절이다. 사람의 일생을 아침 안개나 뜬구름에 비유하여 삶과 죽음의 허무함, 그리고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은 시의 첫 구절이다. 空手來 空手去 是人生(공수래 공수거 시인생)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태어남은 어디서 왔으며 죽음은 어디로 가는가) 生如一片浮雲起 死如一片浮雲滅(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태어남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과 같고,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짐과 같도다) 浮雲自體本無實 生生死死復如是 (부운자체본무실 생생사사부..

307.空中樓閣(공중누각)

이 말은 '공중에 지은 누각'이라는 뜻이다. 근거 또는 토대가 없는 생각이나 사물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송나라 시대 침괄(沈括)이 지은 학술 서적《몽계필담(夢溪筆談)》에 등장하는 '신시(蜃市)', 즉 신기루(蜃氣樓) 현상에서 유래했다. 중국 등주(登州, 현재의 산둥성 펑라이시) 해안에서는 봄과 여름철에 바다 안개 너머로 마치 공중에 궁궐이나 도시가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신기루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당시 사람들은 이 현상을 바다에 사는 거대한 조개나 용(蜃, 신)이 숨을 내뿜어 공중에 대궐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믿었다. 《몽계필담》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登州海市 類樓台 蜃氣所爲也" (등주의 해시는 마치 누각과 같은데, 이는 신기루가 만든 것이다.) 공중에 번듯하게 떠 있는..

306.正心誠意(정심성의)

이 말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뜻으로, 마음가짐을 바르게 다스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유교의 핵심 도덕수양 철학이다. 중국의 유교 경전인 시서 중의《대학(大學)》경 1장에 나온다. 공자의 사상을 제자 증자(曾子)가 정리하고, 훗날 송나라의 주희(주자)가 유교의 핵심 경전으로 삼은 대학(大學)에 수록된 '8조목(八條目)'에서 유래했다. 《대학》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바로잡은 뒤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함)로 나아가는 단계별 수양 과정을 제시한다. 이 중 '정심'과 '성의'는 자신의 내면을 다지는 핵심 단계이다. "물격이후치지(物格而后知至)하고 치지이후성의(知至而后意誠)하고 성의이후정심(意誠而后正心)하고 정심이후신수(正心而..

305.口蜜腹劍(구밀복검)

이 말은 '입에는 꿀을 바르고 배 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달콤한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해칠 마음을 품고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표현은 중국 고서《자치통감(資治通鑑)》 / 《당서(唐書)》에 나오는데, 당나라 제9대 황제인 현종(玄宗) 때의 간신 이림보(李林甫)에게서 유래했다. 이림보는 재상으로 재임했던 19년 동안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정적들을 잔인하게 제거했다. 그는 타인을 대할 때 항상 유화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달콤한 말로 상대방을 칭찬하거나 기쁘게 해 주었다. 그러나 상대방이 마음을 놓고 방심하면, 뒤에서 모함하거나 억울한 죄를 뒤집어씌워 정적을 철저히 몰락시켰다. 당시 사람들은 이림보의 이러한 간사하고 무서운 태도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304..形勢之途(형세지도)

이 말은'권력이나 형세의 변화, 또는 이익을 따라 줄을 서며 간사하게 굴어가는 길(방도)'을 뜻하는 말이다. 지조나 신의 없이 권력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부화뇌동하는 세태나 태도를 비판할 때 쓰이는 표현이다. 중국의《한서(漢書)》 장시조전(張陳王周傳) /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이다. 한나라 초기, 권력의 중심이 이동함에 따라 신하들과 객(客)들이 이익을 찾아 권력자에게 모여들고 몰락한 자를 버리던 세태에서 유래했다. 한나라의 개국공신인 여후(呂後, 고조 유방의 왕후) 세력이 몰락하고 문제(文帝)가 즉위할 무렵, 여러 권력가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흩어지는 광경이 반복되었다. 당시 사가(史家)들은 사람들이 지조를 지키기보다 '권력과 형세가 어느 쪽에 있는가(形勢)'를 살피며 이익이 되는 길로 모여..

303.一毫不似(일호불사)

이 말은 '털 한 터럭이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 초상화(어진 포함) 제작의 핵심 원칙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이 구절의 원문은 일호불사 편석타인(一毫不似 便釋他人)으로, 중국 북송 시대의 학자 정이(程頤, 1033~1107)의 언행록에서 유래했다. 송나라의 성리학자인 정이는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초상화(영정)를 만드는 문제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주자대전(朱子大全)》및 성리학서에 수록된 정이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영정을 그리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털 한 터럭이라도 닮지 않으면 곧 다른 사람이 되고 만다(一毫不似 便釋他人)." 유교적 제례의식에서 조상의 초상화는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 조상의 혼령이 감응하는 실체적 대리물로 여겨졌다. 따라서 실제 외..

302.傳神寫照(전신사조)

이 말은 '인물의 외형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정신과 인품, 기운(神)까지 그림에 담아낸다'는 뜻의 미술 용어이다. 중국 동진(東晉)의 대표적 화가 고개지(顧愷之, 344~405)의 말에서 유래했다. 중국 남북조시대의 역사서인 《세설신어(世說新語)》 '교예(巧藝)' 편과《진서(晉書)》 '고개지전'에 이 고사가 기록되어 있다. 고개지는 초상화를 그릴 때 얼굴이나 몸 형태를 똑같이 베끼는 것보다 대상의 내면과 정신을 포착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인물을 그릴 때 몇 년 동안 눈동자를 그리지 않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四體妍蚩, 本無關於妙處; 傳神寫照, 正在阿堵中. (사체연치, 본무관어묘처; 전신사조, 정재아도중) "사지와 몸집을 그리는 것은 그림의 오묘한 묘미와 본..

301.便是他人(편시타인)

이 말은 '남에게 일어난 일이라도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나의 문제"라는 뜻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와 《자치통감(資治通鑑)》관련 주자학적 해설 등에서 유래했다. 중국 송나라의 학자 주희(朱熹, 주자)의 말과 대화를 기록한 《주자어류》에는 성찰과 경각심을 강조하는 대목이 다수 등장한다. 주자는 다른 사람의 잘되고 못됨, 혹은 타인의 허물과 재앙을 보았을 때 그것을 단순히 '남의 일'로 치부하지 말라'라고 경고했다. 타인의 허물이나 경고를 보면서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일일 수 있다'라고 돌이켜보는 자세를 설명할 때 사용되었다. 특히 조선 시대 성리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여 다음과 같은 맥락으로 강조했다. "見人之一善一惡, 便自反省. 人之過錯, 便是他人, 亦是我, 豈可視爲無關之物?" (남의 한 가지 선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