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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臨時變通(임시변통)

이 말의 의미는'갑작스러운 때(臨時)를 당하여, 형편에 맞게 변화를 주어 막힘없이 처리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어근이 되는 한자 표현들이 결합하여 정착된 한자어이다. '임시변통'이라는 네 글자는 크게 두 개념이 합쳐진 형태이다. 임시(臨時)는 원래 '정해진 때가 아닌, 뜻밖의 일이 일어난 그때'라는 의미이다. 고대 문헌에서 '임(臨)'은 상황에 마주하는 것을 뜻하며, 정규적인 상태가 아닌 예외적인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쓰였다. 변통(變通)은 동양의 3경 중 하나인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 즉, 형편이나 상황이 막혀 답답할 때 고정관념을 깨고 변화를 주어야..

340.臨機應變(임기응변)

이 말의 의미는 '기회(사태)에 임하여 알맞게 변화한다'는 뜻이다. 형편이나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그 자리에서 적절하게 대처함을 의미한다. 이 성어의 유래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역사서인《한서(漢書)》〈신도가전(申屠嘉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나라 문제(文帝) 시절, 승상 신도가는 곧고 정직하여 법과 규율을 엄격히 적용하는 인물이었다. 당시 문제의 총애를 받던 대부 등통(鄧通)이라는 관리가 조정에서 무례하게 행동하고 법을 경시하자, 신도가는 그를 불러 법에 따라 처형하려 했다. 겁에 질린 등통은 문제에게 달려가 구원을 요청했다. 문제는 등통을 살리기 위해 승상 신도가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며 그를 풀어서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후대의 역사학자나 평론가들은 신도가의 정직함과 더불어, 상황에 따라 문제..

카테고리 없음 2026.09.30

339.死生有命(사생유명)

이 말의 뜻은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이 말은 유교 고전인 《논어(論語)》〈안연편(顏淵篇)〉에서 찾아볼 수 있다. 흔히 전체 구절인 사생유명 부귀재천(死生有命 富貴在天)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고, 부귀함은 하늘에 달려 있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말은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그의 동문이자 친구인 사마우(司馬牛)를 위로하며 한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사마우의 형제(사마환퇴)는 포악하고 악행을 일삼던 인물로, 심지어 공자를 해치려 한 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사마우는 의롭지 못한 형제를 차마 형제라 부르지 못하고, 슬퍼하며 자하에게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남들은 다 형제가 있는데, 나만 홀로 형제가 없구나!" 이를 본..

338.見危致命(견위치명)

이 말의 뜻은 '나라나 임금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공자(孔子)와 그 제자 자장(子張)의 대화를 적은 《논어》 자장 편(子張 篇) 자로(子路) 편에 연이어 등장한다. 자장 편(子張 篇)에서 자장은 선비(士)가 갖추어야 할 핵심 덕목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諸各矣夫." (선비가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얻을 것을 보고 의로움을 생각하고, 제사에는 정성을 생각하며, 상례에는 슬픔을 생각한다면 충분하다.) 헌문 편(憲問 篇)에서도 완성된 인간(成人)의 조건을 논하며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見利思義 見危授命)"라는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

337.命在頃刻(명재경각)

이 말의 뜻은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아 곧 죽게 될 지경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사자성어로, 특정 인물이나 사건의 고사(故事)에서 직접 만들어진 성어가 아니라 불교 경전과 한문 고전의 표현에서 유래되어 형성된 말이다. 여기서 '頃刻(경각)'은 눈 한 번 깜빡이거나 숨 한 번 쉬는 사이처럼 "아주 짧은 시간(찰나)"을 뜻한다. 따라서 '명재경각'은 "목숨이 아주 짧은 시간(경각)에 달려 있다"는 의미가 된다. 불교 경전 (사십이장경 등): 부처가 제자들에게 "사람의 목숨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한 제자가 "호흡하는 사이에 있습니다(命在呼吸之間)" 라고 답했다는 유명한 고사가 있다. 이처럼 생명의 위급함과 무상함을 나타내는 불교적 표현(命在頃刻, 命在呼吸)이 일상 언어로 정착하였다. 조선왕조실..

336.一網打盡(일망타진)

이 말의 뜻은 '한 번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다 잡는다'라는 뜻으로, 어떤 무리나 범죄 집단을 한꺼번에 모두 잡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중국 북송(北宋) 때의 역사서인 《송사(宋史)》〈범순인전(范純仁傳)〉에서 유래되었다. 북송 제13대 황제 철종(哲宗) 때, 왕안석의 개혁 정책(신법)을 둘러싸고 신법파(개혁파)와 구법파(보수파) 간의 치열한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구법파의 중심인물이었던 사마광과 범순인(북송의 명신 범중엄의 아들) 등이 관직에서 물러나고, 신법파인 장돈(章惇)이 권력을 잡았다. 권력을 쥔 장돈은 자신과 대립했던 구법파 재상들과 대신들을 모조리 조정에서 몰아내고 처벌하려 했다. 이를 본 범순인은 장돈에게 찾아가 지나친 정치적 보복을 경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張鍾 欲一網打盡..

335.盡忠報國(진충보국)

이 말의 뜻은 '충성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라는 뜻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중국 남송 시대, 북쪽의 금(金) 나라가 침입하여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악비는 어려서부터 의기와 의심이 강하고 무예가 뛰어났다. 금나라의 침략으로 나라가 도탄에 빠지자, 악비는 군대에 입대하여 나라를 구하기로 결심했다. 출정을 앞둔 악비에게 그의 어머니(요씨)는 아들이 혹여나 부귀영화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나라에 충성을 다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악비의 등에 바늘로 네 글자를 문신으로 精忠報國 (정충보국), 또는 盡忠報國 (진충보국)이라고 새겨 넣었다. 이 고사는 《송사(宋史)》 〈악비전(岳飛傳)〉에 기록되어 있다. 악비가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334.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이 말의 뜻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겨 기다린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명나라 때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演義)》에서 제갈량의 적벽대전 및 적송령 전투 상황에 관해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근본적인 사상적 뿌리는 중국 고전《남화경(장자)》과 《유교 고전》의 구절들에 기반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래는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諸葛亮)이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친 관우(關羽)를 변호하며 한 말에서 비롯되었다.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거둔 후, 제갈량은 조조가 도망칠 길목인 화용도에 관우를 매복시켰다. 그러나 관우는 과거 조조에게 입었던 은혜를 잊지 못해 차마 조조를 죽이지 못하고 길을 열어 놓아주었다. 이후 관우가 돌아와 죄를 청할 때, 제갈량은 원래 하늘..

333.盡善盡美(진선진미)

이 말은 '선함(善)도 다하고 미함(美)도 다하였다'라는 뜻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훌륭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논어(論語)》〈팔일(八佾)〉편에서 공자(孔子)가 순(舜) 임금의 음악인 소(韶)와 주나라 무왕(武王)의 음악인 무(武)를 듣고 비교·평가한 대목에서 유래했다.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자위소 진미의 우진선야) 공자가 소(韶) 음악을 평하기를, "아름다움(美)도 극치에 달했고, 선함(善)도 극치에 달했구나."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위무 진미의 미진선야) 무(武) 음악을 평하기를, "아름다움(美)은 극치에 달했으나, 선함(善)은 아직 극치에 달하지 못했구나." 공자가 두 음악에 대해 선함(善)의 차이를 둔 이유는 왕위에 오른 과정과 통치 명분에 있다. • 소(韶) 음악은 盡善盡美 ..

332.忠臣不事二君(충신불사이군)

이 말은 '충성스러운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한 번 매인 군주나 국가에 대한 절개와 지조를 목숨 바쳐 지키는 신하의 도리를 의미한다. 이 성어는 통상 烈女不更二夫(열녀불경이부: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와 짝을 이루어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라는 구절로 자주 쓰인다. 이 말의 유래는《사기(史記)》 전단열전(田單列傳)에 기록된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절개 높은 선비 왕촉(王燭)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연(燕)나라의 명장 악의(樂毅)가 제나라를 침공하여 수도 임치를 함락하고 승승장구할 때의 일이다. 당시 왕초는 학식이 높고 덕망이 있어 민심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연나라 군대는 왕촉이 살고 있던 마을을 둘러싸고, 그를 제나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