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 15

119.池魚之殃(지어지앙)

이 성어는 '못에 사는 물고기의 재앙'으로 풀이된다. 숨은 의미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 뜻밖에 연못의 물고기가 재앙을 당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이 말의 典故(전고)는 진(秦)나라의 재상(宰相) 呂不韋(여불위)의 ‘呂氏春秋(여씨춘추)’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이다.춘추시대 宋(송)나라에 대부였던 桓魋(환퇴)라는 사람이 있었다. 성이 向(향)이어서 向魋(향퇴)라고도 하는 그는 孔子(공자)의 제자 司馬牛(사마우)의 형이기도 하다. 그런데 큰 나무 아래에서 예를 가르치던 공자를 해치려고도 한 망나니였다. 환퇴가 어느 때 천하에서 가장 진귀한 보석을 지니게 됐다. 소문을 들은 송나라 왕이 보석을 차지하려는 욕심이 있었지만 환퇴가 줄 리 없었다. 그러던 중 환퇴가 죄를 지어 종적을 감췄다. 보석의 소재가 궁금했던..

118.附和雷同(부화뇌동)

풀이하면 '화(和)에 뇌동(雷同)을 붙인다'는 뜻이다. 즉 조화를 핑계로 목소리 큰 사람에게 동조하여 제 주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유교의 경전 예기(禮記)의 편에 "이야기에 (쉽게) 움직이지 말고, 뇌동(雷同) 하지 마라. 반드시 옛 성현을 모범으로 삼아 이야기하라." 고 나온다. 여기서는 '뇌동', 즉 우레 소리에 만물이 울리 듯 분별없이 남을 따라 하는 태도를 직접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따져보지도 않고 남의 말에 휩쓸리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본 것이다. 원래는 '뇌동'만으로도 뜻이 통했는데, 나중에 '부화'라는 말이 덧붙여져 의미가 더 강조되었다. 또, 논어(論語)의 편 공자 말씀에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소인동이 불화(小人同而不和)..

117.토붕와해(土崩瓦解)

이 성어는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진다'는 뜻으로, 어떤 조직이나 사물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버림을 이르는 말이다.이 말은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 주보언열전(主父偃列傳)에 나오는 서락(徐樂)의 간언에서 토붕(土崩)과 와해(瓦解)의 의미를 자세히 알 수 있다.중국의 한나라는 개국 이후 제6대 황제인 경제(景帝)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을 평온하게 보내 국력이 충만하였다. 제7대 황제로 즉위한 무제는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흉노를 토벌하는 등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나라의 위세를 만방에 떨칠 수 있었으나, 필연적으로 국력이 소모된 상황이었다.이에 서락(徐樂)은 무제에게 국정에 대하여 간언 하는 글을 올렸다. 서락은 '국가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토붕에 있다. 토붕(土崩)이란 백성들..

116.任重道遠(임중도원)

이 말의 뜻은 ''맡겨진 일은 무거운 데 갈 길은 멀다'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지금은 중요하고 어려운 사명을 맡았을 경우나 인내와 각오가 필요함을 강조할 때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중국 고전인 논어 태백 7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선비의 덕목을 통해 우리가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미래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증자가 말했다.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을 수 없다. 짐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으로써 자기의 짐으로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에서 任重而道遠을 任重道遠으로 줄여서 쓴 말이다.

115.狡兎三窟(교토삼굴)

이 말은 '꾀 많은 토끼는 세 개의 굴을 준비한다'는 의미이다. 미래에 대비하여 준비를 철저히 해 두면 화가 없다는 뜻이다. 유사어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있다. 중국 역사서 사기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과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 전고가 있다.제나라의 재상이었던 맹상군은 3천여 명에 달하는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중에 괴짜처럼 보이는 풍환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당시 맹상군은 많은 식객을 부양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옆 마을의 주민 1만 가구를 대상으로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돈을 제때 갚지 않아 근심에 빠져 있었다. 이에 풍환이 나서며 그 문제는 자신이 해결할 것이니, 받은 돈으로 무엇을 할까 물었다. 맹상군은 풍환에게 "집에 없는 것을 사 오너라."며 풍환을 떠나보낸다.그런데..

114.刺股懸梁(자고현량)

이 한자를 풀이하면 '넓적다리를 찌르고, 대들보에 매달다.'라는 뜻으로, 게으름을 이겨 내고 열심히 공부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현량자고(懸梁刺股), 현두자고(懸頭刺股)라고도 한다. 이 말은 중국 전국 시대의 역사서인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두 사람의 고사를 합한 말이다. 진(秦)나라 소진(蘇秦)은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넓적다리를 찌르며 공부하였고, 조(趙)나라 손경(孫敬)은 새끼줄로 상투를 묶어 대들보에 매달아 졸음을 쫓으며 공부하였고 한다. ​ '자고'라는 말은 진(秦)나라 소진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합종'의 설계자 소진은 처음에 진(秦)나라 혜왕(惠王)에게 연횡책(連橫策)을 유세하다가 좌절하여 집으로 조(趙)나라 한탄하며 궤짝에 들어 있는 책들을 꺼내 살펴보다가 태공(太公)이 지은 "음..

113.刻鵠類鶩(각고유목)-畵虎成狗(화호성구)

이 성어를 풀이하면 '고니새를 새기다 따오기를 닮게 새 긴다'는 뜻이다. 옛 성현의 글을 배워 온전하지는 못해도 착한 사람은 될 수 있다는 말로 쓰인다. 이 말은 중국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나온다. '고니를 새기 다 안 되어도 따오기쯤은 새기었고, 범을 그리다 안 되어도 개쯤은 이루었다.(刻鵠不成尙類鶩 畫虎不成反類狗)' 후한(後漢)의 명장 마원(馬援)에게 형이 남긴 조카 둘이 있었다. 이들은 남 비방하기를 즐기고 경박한 협객들과 어울려 지내기를 좋아했다. 멀리 교지국에 나가 있던 마원이 걱정이 되어 편지를 보냈다. '용백고(龍伯高)는 돈후하고 신중해서 가려낼 말이 없다. 겸손하고 검소하며 청렴해서 위엄이 있다. 그래서 내가 그를 아끼고 무겁게 여긴다. 너희는 그를 본받거라. 두계량(杜..

112.莫逆之友(막역지우)

이 말의 뜻은 '서로 거스르지 않는 친구'라는 뜻으로, 아무 허물없이 친한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장장(莊子)》 내편(內篇) 대종사(大宗師)에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내용의 우화가 나온다. 이 우화는 둘 다 바깥의 사물에 얽매이지 말고 천리(天理)를 좇아 마음을 비우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으로, 그 도입부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도 물론 가공인물이다.​어느 날 자사(子祀)·자여(子輿)·자려(子犂) ·자래(子來) 네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능히 없는 것으로써 머리를 삼고, 삶으로써 척추를 삼고, 죽음으로써 엉덩이를 삼겠는가. 누가 생사존망(生死存亡)이 일체임을 알겠는가. 내 이런 사람과 벗이 되리라.” 네 사람이 서로 보며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게 없어서 마침..

111.水魚之交(수어지교)

이 말은 원래 '물과 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매우 친밀하게 사귀어 떨어질 수 없는 사이를 말한다. 어수지친(魚水之親)이라고도 하는데, 부부 사이나 남녀가 매우 사랑하는 것을 어수지락(魚水之樂)이라고도 한다.​이 말은 중국 삼국시대의 유비(劉備)와 제갈 량(諸葛亮)의 사이를 비유한 데서 비롯된다.​《삼국지》 을 보면, 유비와 제갈 량과의 사이가 날이 갈수록 친밀하여지는 것을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불평하자, 유비가 그들을 불러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다는 것은 고기가 물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는 불평을 하지 말도록 하게(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라고 타일렀다. 이리하여 관우와 장비는 다시는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두산백과)​

110. 刎頸之交(문경지교)

이 말을 풀이하면 '목을 베어 줄 수 있는 사귐'이라는 뜻이다. 우정이 깊어 생사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를 말한다. 문경(刎頸), 문경교(刎頸交), 문경지계(刎頸之契)라고도 말한다. 중국 역사서《사기(史記)》의 에 나오는 말이다. ​ 인상여(藺相如)는 원래 전국시대에 조(趙)나라 환관 우두머리인 무현(繆賢)의 부하였으나 진 소양왕(秦 昭襄王)에게 빼앗길 뻔한 화씨의 구슬(和氏之璧)을 무사히 보전해 돌아온 공으로 상대부(上大夫)가 되었다. 후에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에게 민지(渑支)에서 회견을 하자고 제안했다. 사실 진나라의 왕은 조나라의 왕을 망신 주고 굴복시킬 의도였는데, 이를 눈치챈 인상여가 용기 있게 나서 조나라 왕은 치욕을 면할 수 있었다. 회견을 마치고 돌아와 조나라 왕은 인상여의 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