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청년의 미소
대구 상인동 롯데백화점과 지하철 본부 청사 사이 상인서로 도로는 편도 1차선으로 늘 차들이 줄을 잇는다.
어느 날 오후, 50대 중반 쯤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햄버거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바로 뒤따르던 차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뒤차 안에는 듬직하게 생긴 젊은 청년이 핸들을 잡은 채로 앞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지나서 앞차의 운전석 문이 열리더니 그 아주머니는 차에서 내려 문을 잠그고 여유 있게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청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핸들에서 손을 내리고 잠자코 기다렸다. 뒤에 오던 차들은 모두 멈춰 서서 경음기를 몇 차례 울리거나, 운전석 창을 내리고 기웃거리며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뒤차의 성질 급한 운전자 한 사람이 청년에게 다가와 화난 얼굴로 왜 그냥 있느냐고 따지듯이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싱긋이 웃으며 말없이 손으로 앞차를 가리키며 할 수 없다는 뜻을 전하고, 당연한 기다림인 듯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아주머니가 손에 햄버거 봉지를 들고 가게에서 천천히 나와 자기 차를 둘러보고 난 후 차문을 열려고 하였다. 그 순간 저 뒤편에서 경음기 소리가 서너 번 울렸다. 뒤를 돌아 본 아주머니는 자기 차 뒤로 길게 늘어 선 차들을 보고 자기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듯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운전석에 올랐다. 그리고 천천히 출발하였다.
아주머니가 출발하자 기다리던 청년은 마치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 어머니를 반기듯 미소를 지으며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천천히 출발하였다. 그 청년의 뒤를 따라가는 운전자들의 표정은 모두 일그러져 있었다. 어떤 사람은 속이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 않지만 입을 희죽거리며 지나갔다.
모두가 화를 낼 때 혼자 느긋하게 웃던 청년의 훈훈한 미소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생활에서 기본예절이 된 질서 의식, 무질서를 용서하기란 너무나도 비정하리만큼 삭막해진 세상, 이런 무질서와 불법도 정으로 이해하고 포용해 주던 그 청년의 따뜻한 마음이, 도시의 오아시스인양 내 가슴에 싱그럽게 자리 잡고 있다.
오늘도 그 길은 그 청년의 미소를 담은 채 늘 그랬던 것처럼 차들이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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