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상인(心心相印)
한 사흘 날씨가 춥더니 오늘은 겨울답지 않게 퍽 포근하다. 크리스마스 날엔 눈이 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매일 오후에 2㎞를 산책하는 것이 이제는 거의 일과가 되었다. 오늘은 무작정 발길 가는 데로 가려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섰다. 한참을 걷다가보니 대구보훈병원 바자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매스컴에서나 사회단체, 기관에서 소외된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벌이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병원에서도 좋은 행사를 하는구나 생각하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 복도에는 많은 환자와 보호자, 방문객들이 복잡하게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복도를 지나 중간 정원을 둘러보아도 바자회가 열리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안내 데스크에 가서 살짝 물었다. “어제 하루만 했어요.” 현수막 제목만 읽고 그 아래 적힌 날짜를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병원을 나와 월광수변공원 호숫가로 발길을 옮겼다. 이 공원은 도원 저수지 주변을 정비하여 수변 산책길을 만들었고, 숲 속 여기저기에는 대구에서 활동하신 작곡가, 시인들의 기념비도 세워져있다. 밤이면 달빛과 호수의 분수 조명이 어우러져 물결에 반짝이는 찬란한 모습이 고요한 숲 속에서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과 만나 더욱 황홀한 꿈을 꾸게 하는 곳이다. 십여 년 전만해도 도원 호숫가 수밭골 작은 마을은 돌담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고, 오두막집 마당 감나무 아래로 강아지가 쪼르르 나와 반기며 짖는 소리와 나직한 돌담장을 뒤덮은 호박덩굴 속으로 크고 작은 호박이 아련한 고향의 인심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높은 건물로 된 식당과 유럽풍 카페가 현란한 간판 조명을 번쩍이면서 마을 입구를 꽉 메우고 있다. 새롭게 들어선 식당 건물 사이에는 예전에 몇 번 찾은 적이 있는 마당 깊은 ‘할매 묵집’이 옛 모습 그대로 있어 반가웠다. 그 앞을 지나 마을 위쪽 정자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보호수로 지정된 우람한 느티나무 네 그루가 서로 손잡고 굵은 줄기를 엮어 올려, 가지마다 분수를 뿜듯 실가지들을 하늘 가득 펼치고 있었다. 큰 나무 아래에는 당산제(堂山祭)를 올리던 제단이 있고, 그 뒤에 당산신(堂山神)이라고 쓴 나직한 신주석(神主石)이 숨어 보인다. 정자나무 밑에 놓여있는 긴 의자에 털썩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하늘을 본다. 까치둥지 한 채가 높게 자리 잡고 있다. 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까치와 어치(산까치)들이 몰려들어 나무 위에서 푸드덕거리며 지저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마 까치가 자기 집을 침범한 어치들을 몰아내려는 듯했다. ‘이 놈들이 왜 이렇게 시끄러워. 조용하면 좋겠구먼.’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얼마 후 어치들이 산으로 날아가고, 까치들은 커다란 정자나무 가지에 드문드문 자리를 잡으니 숲은 금방 잠자듯 조용해졌다. 그 고요 속에 나도 함께 머물러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마을 뒷길을 걸어 나와 호숫가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연신 불러대며 이리저리 노란 축구공을 튀기면서 뛰어다녔다. 소나무와 단풍나무로 조성된 숲 속, 매끄럽게 다듬어 둥글게 모양을 낸 커다란 돌엔 전상렬 시인의 ‘고목과 강물’이란 시가 또렷이 새겨져있다. 그 아래쪽에는 음악가 박태준 선생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진 노래비가 있는데 ‘뜸북뜸북 뜸북새……’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오빠 생각’ 악보가 가사와 함께 적혀있었다. 이 노래는 ‘동무 생각’과 함께 부르던 곡이라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잠시 흥얼거려 보았다. 몇 발자국을 옮기니 이번엔 이설주 시인의 ‘내 고향은 저승’이란 시가 보인다. 전편에 경상도 사투리를 시어(詩語)에 듬뿍 담아 진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시였다. 몇 번 읽고, 다시 또 읽어 본다. 시인들은 어찌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어휘를 골라낼 수 있었는지 새삼 감탄스럽다. 가슴 찡한 글귀를 몇 번이고 읽었는데 또 읽고 싶어지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시비를 뒤로하고 다시 호숫가를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할아버지 한 분이 죽은 나뭇가지 둥치를 들고 호숫가 울타리를 넘겨다보며, “나오라 카이 뭐 하노!” 호수 안쪽 물가 비탈진 옹벽에 들어가 서 있는 할머니를 보고 하는 말이다. “그럼 당신이 해보라 카이. 들어오지는 않고 왜 말만 하능교?” 호수 안을 내려다보니 노란 공이 물에 천천히 떠내려 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공을 짧은 나뭇가지로 건지려고 하는 중이었다. 아마, 조금 전에 본 그 초등학생 손자가 공을 치다가 호수에 들어간 모양이다. 옆을 지나오면서 혹시 실수하면 매우 위험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해결해 드릴 수 없는 일이라서 안타깝지만 발길을 옮겼다. 호수의 울타리가 끝나는 곳에 와서 걱정스러워서 그곳을 돌아보았다. 할아버지가 더 긴 나뭇가지를 들고 할머니 옆으로 들어가서 물위에 뜬 공을 건지려고 낚시질을 하고 손자는 울타리 밖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들고 들어간 긴 나뭇가지도 공까지 미치지 못하고 몇 차례 물장구만 칠뿐이었다. ‘그만 포기하고 나오시면 좋겠다.’ 고 생각하면서 물가 모퉁이 길을 돌아, 물에 잠겼던 버드나무 뿌리가 덩그렇게 드러나 보이는 물 갓길에 내려섰다. 그 아래 물결에 밀린 조그마한 모래 턱에 흰 무늬를 목에 두른 검은 오리 한 마리가 부리로 깃을 쪼고 있었다. “훠이∼! 훠이∼!” 나와 10m 정도 아래에 있으니 놀랄까봐 나직하게 부르는, 내 작은 목소리라도 충분히 들릴 수 있는 거리이다. 오리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여전히 부리로 깃을 파고 있었다. 그만 두고 서너 발자국을 옮기는데 오리가 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리는 잔잔한 수면을 가르며 미끄러지듯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문득 공을 건지려던 노부부가 궁금하였다. 아직 포기하지 않고 물가에서 나뭇가지를 어깨에 메고 물 위에 뜬 공이 바람에 밀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오리가 공을 밀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오리는 호숫가를 따라 누가 시키는 것처럼 할아버지와 물 위에 떠 있는 공 사이를 헤엄쳐 지나갔다. 그러자 오리가 일으킨 물결에 공이 물가로 조금씩 밀려왔다. 가만히 지켜보시던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나뭇가지를 넣어 공을 건져냈다. 노부부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였다. 밖에 있던 손자는 두 손을 흔들며 소리 질렀다. “오리야, 고맙다∼! 고맙다. 오리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공을 가지고 공원으로 올라가자 오리는 공이 있던 곳을 한 바퀴 돌아 물살을 가르며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염화미소(拈華微笑)’ ‘심심상인(心心相印)’
월광수변공원을 산책하고 내려오는 동안, 걱정하던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감동스런 오리의 움직임이 내 가슴 속에 또렷한 영상이 되어 오래오래 헤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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