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이륙
지난 2월 하순에 용인에 사는 절친한 친구 명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3월 24일 무렵에 중국의 정주·낙양·서안을 묶은 여행 상품이 있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중국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는 좋은 기회다 싶어 흔쾌히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혹시 붕우회원 중에 희망자가 있으면 함께 여행하면서 긴 여로에 서로가 의지하면 피로를 풀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붕우회 카페에 공지하고 문자를 띄웠다. 마침 소정과 청담이 동참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다. 1년에 한 두 번씩 1박 2일로 만난 지 40여 년이 된, 가족 같은 부부계원이니 더없이 마음이 편하고 기쁘다.
그런데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집사람은 밖에서 1박이라도 하는 부부 모임이 있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파김치가 되는데 4박 5일 동안의 중국 여행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함께 간다고 할 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사람이 기분좋아하는 때를 틈타 중국 여행 이야기를 슬쩍해보았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혼자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며칠에 걸쳐 ‘이 나이쯤 되면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해본 친구들이 없다.’ ‘모임의 대화에서도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면서 설득 반 구걸 반으로 겨우 승낙을 받아냈다. 그러나 여행 경비를 입금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태클을 걸어와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출발 당일은 오전 8시 30분까지 인천공항에 도착하여야 하는데, 대구 발 KTX 첫 열차로 서울에 도착하여 가장 빠르다는 전철을 갈아타고 인천공항에 가더라도 약속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된다. 동대구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인천공항 직통 고속버스는 첫차 시각이 더 늦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하루 전에 인천 공항 근처에 가서 숙박을 해야 한다. 번거롭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런 귀찮아할 상황은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나 혼자 최대한 편안한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혹시나 싶어서 대구공항 사이트에 들어가서 인천공항 가는 국내선 항공기 시간을 검색해 보았다. ‘대한항공 6시 50분 대구 출발, 7시 50분 인천공항 도착’이라는 시간표가 눈에 번쩍 띄었다. 딱 맞는 시각이었다. 당장 인터넷으로 티켓 2장을 예매해버렸다. 항공료의 부담은 더 되더라도 여행 출발부터 번거로움을 줄이고 이동에 대한 편안함을 집사람에게 제공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3월 24일 아침, 캐리어를 하나씩 끌고 대구공항에 5시 50분쯤 도착하여 예매표를 항공권으로 교환하고 가방을 화물에 의뢰하였다. 검색대를 통과할 때, 집사람에게서 검색 신호가 울려 휴대용 배낭을 뒤지니 산행할 때 넣어둔 과도(果刀)가 나왔다. 웃으며 그 자리에서 맡겨버렸다. 기내에는 액체와 흉기를 소지하고 탑승할 수 없는 줄 알고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넣어놓은 것을 찾아내는 검색 요원이 고맙게 생각되었다.
비행기는 정시에 대구공항을 이륙하였다. 아침 해가 눈부시게 비치는 비행기 창 너머엔 하얀 구름이 몽글몽글 깔려있어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었다. 추풍령 상공을 지날 때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처럼 기체가 흔들려 혹시나 하며 겁을 먹기도 했지만 ‘기압골의 차이로 인한 흔한 상황’이라는 기내 방송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인천공항에 정시로 도착하여 국제선 탑승 3층 카운터로 올라갔다. 명덕, 소정, 청담 부부가 벌써 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여행사 직원이 주는 탑승권과 여권, 비자, 화물 명패, 여행 일정표를 받았다. 미팅이 끝나자 우리는 캐리어(carrier)를 부치고 여권과 탑승권을 가지고 출국 수속을 마쳤다.
아직 탑승 시각까지는 1시간쯤 여유가 있다. 그동안 친구들은 면세점들을 둘러보며 쇼핑을 한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민지가 집에서 인터넷으로 면세점에 예매한 화장품을 찾으러 물품 인도장을 찾아갔다. 인천 공항은 규모가 워낙 커서 내부에 무빙워크(moving walkway:자동길)를 몇 군데 설치해 두었는데도 탑승 게이트를 찾아가는데 지칠 지경이다. 탑승 게이트로 돌아오면서 백화점처럼 화려하게 진열해 놓은 가게를 이곳저곳 둘러보며 여유롭게 쇼핑을 하였다. 이윽고 탑승 게이트가 열리자 우리는 천천히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 정주행 대한 항공은 현지 공항 사정으로 20분 늦게 이륙하였다.
300석 규모나 되는 객석, 그리고 개개인의 하물, 승객이 먹을 기내식, 기내 쇼핑 물품, 승무원, 항공기 자체 무게, 싣고 다니는 유류 등 그 무게는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가볍게 새처럼 하늘로 날아올라 그 먼 길을 시속 800km속도로, 3000피트(9000m) 상공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니, 새삼 인간 두뇌의 위대함을 느껴본다.
기내에는 단정하게 차린 스튜어디어스가 미소 띤 얼굴로 승객의 편의를 틈틈이 점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기내식과 음료수를 제공하고, 순회 하면서 기내 쇼핑을 안내하고, 결재하고, 상품 배달까지 하고, 빈틈없이 편의를 제공하면서 승객을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편안히 모신다. 비행하는 시간 동안 스튜어디어스가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줄 몰랐다. TV에서 볼 때는 하늘의 선녀처럼 곱게 차려 입고 대접받는 부러운 직업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고된 일을 하다니 세상에 쉬운 직업은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허공을 가르며 2시간쯤 날아가자 중국 대륙이 발 아래로 펼쳐졌다. 넓은 평야에는 녹색 밀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처음으로 찾아오는 대륙 문화에 대한 기대로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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