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소림 음악대전 (禪宗少林 音樂大典)
소림사에서 하산할 때, 이미 사방은 깜깜해져 바깥은 보이지 않고 전조등만 포장도로를 따라 비추고 있었다. 일행들 중에서 배고프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중식도 기내식으로 일찍 먹었고 이 늦은 시간까지 영양공급을 하지 않았으니 그럴만하다.
오늘 저녁 식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운영하는 사찰 공양간에서 웰빙식을 하기로 예약되어 있었다. 어두워서 무슨 사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소림사에서 조금 떨어진 조그마한 사찰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덟 명이 커다란 중국식 회전 식탁 하나를 놓고 의자에 둘러앉기 알맞은 방이었다.
음식이 들어오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저(箸)를 들고 맞을 보기 시작했다. 사찰 음식이니 당연히 육류는 없었다. 그런데 모두 맛을 모르겠다며 한 마디씩 투정 섞인 말을 내뱉는다. 맛이라고는 나지 않는 밀가루만으로 쪄낸 흰 빵, 불면 날아갈듯 찰기 없는 푸석한 쌀밥, 익힌 양배추, 두부, 그리고 무슨 식재를 어떤 식용유로 볶았는지 알 수 없는 몇 가지 요리도 도무지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하다는 중국 음식을 처음 먹어보는 맛이 이렇게 절무겸미(絶無兼味)하다니 식사에서 모두들 실망하는 눈치였다. 회전 식탁을 이리저리 돌려보아도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은 찾을 수 없지만 허기진 탓에 본능적으로 배를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선종소림 음악대전을 관람하기로 하였다. 관람료가 50$, 우리 돈으로 5만 6천 원쯤 되니 적은 요금은 아니었다.
초봄의 밤바람이 제법 쌀쌀하여 야외 공연 1시간 20분을 견뎌낼까 걱정이 되었다. 모두 모자를 깊숙이 쓰고 방한대와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고, 중국인들이 겨울에 입는 짙은 녹색의 긴 솜 외투를 받아 입었다.
야간 작전에 투입된 중국 병사들의 모습이 된 우리들은 서로서로 쳐다보고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면서 입장했다. 어두운 통로를 따라 들어가서 시멘트로 만든 등받이 없는 긴 벤치에 쪼그리고 앉았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사방이 캄캄한데 어렴풋이 보이는 산 능선 위 하늘에는 드문드문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윽고, 둔탁한 석경(石磬) 소리가 몇 차례 울리고 카랑카랑한 음색의 이름 모를 중국 악기 소리가 어두운 산 속에 메아리친다. 오른쪽 산에 세워 놓은 커다란 바위 스크린에 한자로 된 자막을 비추면서 서서히 무대의 조명이 켜진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산골짜기 여기저기에 웅장한 전각과 수많은 탑과 불상들이 나타나고, 개울과 교량, 연못과 마당, 길과 바위와 나무 등, 실제의 자연물을 이용한 무대가 장엄하게 펼쳐졌다. 놀랍다. 사람의 시각 범위를 벗어난 넓은 자연 무대이기에 한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음악에 맞춰 동시다발적으로 출연하는 수많은 배역들의 모습을 한 눈에 다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시선을 좌우로, 상하로, 산 능선이 흐르는 하늘까지 바쁘게 움직여 살펴야 했다. 다채로운 조명은 시선을 잠시도 한 곳에 멈추게 하지 않고, 밤하늘과 산하를 압도하는 장엄한 음악은 종시로 관객의 영혼을 빼앗아간다.
웅장하다. 장엄하다. 화려하다. 실내 무대만 보아오던 나에겐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다. 장면마다 무대에 가득하게 등장하는 출연자들, 그들이 입고 나오는 다양한 의상,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나온 그 많은 소품들,
악기, 동물까지 실로 가공할 연출이었다. 우람한 산을 배경으로 펼치는 그들의 몸짓은 때로는 철새들의 군무 같고, 때로는 비 온 뒤에 깊은 산골짜기를 감돌아 솟아오르는 하얀 안개 무리의 비상(飛翔) 같기도 하였다.
선종소림 음악대전은 숭산 소림사에서 7㎞정도 떨어진 소실산(少室山) 대선곡(待仙谷)이라는 한 협곡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다.
소림 무술사, 소림 승려, 악기 연주자, 무용수 등 600여 명의 아티스들이 숭산 협곡의 실경 무대를 배경으로, 현장 찬송과 사계절의 경관 변화를 불교 음악과 함께 휘황찬란한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
음악은 총 5악장인데 1악장은 수악(水樂), 2악장은 목악(木樂), 3악장은 풍악(風樂), 4악장은 광악(光樂), 5악장은 석악(石樂)으로 구성하였고, 불교 선종의 교리인 불입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의 깨달음을 기본 소재로 무술 수련과 중국 전통 음악을 조합하여 중국 영화의 거장 탄툰(Tan Dum)이 총감독을 맡았다고 한다.
무극(舞劇) 형식으로 표현한 음악대전의 내용은 소림사 승려들의 수행 생활에서 일어나는 번다한 일과와 무술 수련의 모습, 사계절의 기후에 따라 아름답게 변화하는 풍경과 자연의 소리, 그리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수행과 수련을 이어가는 모습을 꾸며내고, 달마 대사가 소림사로 돌아오는 장면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산과 계곡을 날아다니며 검술을 연마하는 장면, 산꼭대기에서 건너편 산기슭까지 줄지어 불상이 나타나는 장면, 산 너머에서 학교 운동장만한 보름달이 솟아올라 초승달로 변하는 장면, 눈보라가 온 산에 휘날리는 장면들은 이번 여행이 끝나더라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더욱 감동스러운 것은, 많은 출연자들이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것과는 달리,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네 명의 스님이 산 속 여기저기의 암반 위에 앉아, 계절의 변화나 어려운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정(禪定)에 든 모습은 선종 소림의 종지(宗旨)를 잘 표현한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남을 것 같다.
막간도 없이 이어지는 공연에 객석에서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감탄의 소리가 쏟아졌고 마지막 조명이 꺼지자 환호와 기립 박수가 숭산 계곡에 메아리쳤다.
무엇이 이토록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게 한 것일까? 그것은 거대한 실경 무대 장치의 감동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공연 시간 내내 긴장과 평화, 단조로움과 화려함, 빠름과 느림, 고요와 혼돈(混沌), 많음과 적음 등의 상대적 개념을 절묘하게 엮어낸 빛과 소리와 움직임의 하모니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차가운 밤바람도 비켜간 그 감동의 장면에 모두가 흡족해 하며 저마다 한마디씩 감회를 토로하는 동안 버스는 정주 정비 국제 호텔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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