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기>
소림사(少林寺)
중국 정주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곳 시계는 우리나라 시계보다 한 시간 늦게 가고 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조선족 현지 가이드와 미팅을 가진 후 그쪽에서 준비해 온 미니버스를 타고 하남성 등봉현에 있는 숭산(嵩山)의 소림사로 향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마이크를 잡고 낮선 곳에 온 우리 여덟 사람에게 하남성과 정주에 대해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하남성(河南省)은 황하의 남쪽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학교에 다닐 때 역사책에서 배운 인류의 고대 문명 발상지는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 등 네 곳인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황하이다.
또한, 중국의 6대 고도(古都)인 서안, 북경, 낙양, 남경, 개봉, 항주 중에서 낙양, 개봉이 이 하남성 안에 있고, 성도(省都)인 정주(鄭州)도 3,500년의 역사를 지닌 오래된 역사 도시이다.
우리 버스는 한동안 평원을 줄기차게 달렸다. 드디어 차창으로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는 골짜기를 돌아 오르며 엔진 소리를 더욱 높여갔다. 높고 낮은 건물에는 온통 붉은 글씨로 쓴 한자 간판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oo 酒店, oo 學院’이라고 적혀 있는 산기슭의 큰 건물에는 꽤 넓은 운동장이 있고, 붉은 운동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줄을 지어 무술 수련을 하고 있다. 산 입구에서 소림사까지 이르는 10km 정도의 도로 좌우에 이런 무술 도장이 수백 개나 있다고 한다.
중국 영화에서나 보았던 초인적인 소림 무술의 현란한 동작과 신기한 묘기의 무예인들이 모두 저 많은 수련장에서 배출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광 온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동양인은 물론 흑인과 백인들까지 파도처럼 들어가고 나온다. 각국에서 찾아 온 사람들에게 각각 그 나랏말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여러 가이드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마치 언어종합시장에 온 듯하다.
아마 저 사람들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고, 서로 다른 언어로 설명을 듣고 있지만,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은 모두 비슷할 것이라 생각해 본다.
초대받지 않은 저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려고 왔을까?’
‘무엇을 알려고 왔을까?’
‘무엇을 찾으려고 왔을까?’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스스로 소림사를 찾아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달마 스님이 말없이 살다간 이 깊은 산속에서 봄이면 꽃향기가 피어나듯 스님의 향기가 온 세상으로 피어났기 때문이리라. 꽃은 한 곳에 피어나서 한철 지척의 나비를 부르지만, 덕 높은 스님은 입적하신 후에도 긴 세월 끝없이 중생을 부르는구나!
소림사는 495년에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에 의해 창건되었고, 인도 스님 보리 달마가 이곳에 와서 선종(禪宗)을 창설하고, 9년 동안 면벽(面壁) 좌선(坐禪)한 곳이다. 달마 스님이 연마하던 소림 권법(拳法)이 중국 고유 무술이 되어 소림사가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달마 스님의 전설 같은 신묘한 불법 수호 행적들이 1,500년의 역사를 가진 고찰의 명성을 더욱 빛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지가 3만㎡인 이 절은 전성기인 당나라 때에는 궁전같이 컸고 스님이 2,500 명이나 있었다. 스님들은 무기(武技)와 무예(武藝)에 능란하여 당나라 태종을 도와 공을 세운 적도 있다고 한다. 유적으로 산문, 입설정, 천불전, 백의전, 당태종 소림사교비, 탑림, 달마 면벽석 등이 있다. 그리고 사찰 내에 무술 호텔도 있다.
공연 시간이 임박하다기에 ‘소림 무술 쇼’를 먼저 보기로 하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조명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둥근 원형 극장 안은 순식간에 관람객으로 꽉 차있었다. 검술, 봉술, 차력 등 고도의 수련 없이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기예가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약 20분 동안 보여준 이 공연은 소림사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명성 높은 소림 무술의 일부를 보여주기 위해 소림사 무술관에서 기획한 것이라 한다.
소림사 무술관에서 무술을 배우는 수련생 중에는 스님이 될 입산(入山) 제자도 있고 일반인인 속가(俗家) 제자도 있다고 한다.
공연장을 나와 조금 걸어 들어가니 일주문에 걸린 소림사(少林寺) 편액이 나무 숲 사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주문 좌우에는 4층 탑 모양의 종루(鐘樓)와 고루(鼓樓)가 쌍둥이처럼 서서 날아갈 듯 사모 지붕 추녀를 한껏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 앞에 모여 관람 안내를 받고 기념 촬영도 하였다.
일주문에 들어서니 길바닥에 커다란 연꽃 문양을 새긴 검은 돌이 천왕문까지 깔려있다.
‘이 연꽃 문양을 밟고 지나가면 장수한다.’
는 말에 모두가 숙연한 걸음으로 정성들여 밟는다.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가에 서 있는 우람한 나무 한 그루는 손가락으로 찌르는 권법을 연마한 듯 반질반질하게 뚫린 구멍이 마치 총 맞은 것 같이 보여, 무술 수련의 흔적을 말없이 보여 주는 듯했다.
부처님께 정중히 예배하고 향공양을 올렸다. 경내를 한 바퀴 돌아 육조전(六祖殿)을 내려서니 달마 대사의 모습이 높이가 5m 정도 될듯한 장방형의 오석(烏石)에 부조로 새겨져 있다.
눈동자가 부리부리한 얼굴에서 심오한 마력을 느껴서인지
‘발 부분을 쓰다듬으면 선(禪)의 기(氣)를 받는다.’
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인도에서 법을 받고 중국으로 그 법을 전하러 오신 달마 대사는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가 된다. 그의 법맥(法脈)을 이은 2조 혜가(慧可) 스님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혜가'가 수련을 하고 있는 달마 대사를 찾아왔다. 혜가는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청했고, 달마 대사는 이를 냉정하게 뿌리쳤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혜가에게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면 받아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고민 끝에 혜가는 눈이 내리던 날 달마 대사 앞에서 자신의 왼쪽 팔을 잘랐다. 팔이 잘려나간 부분에서 피가 떨어져 바닥의 눈이 붉게 되니 붉은 눈이 내린 것이다. 달마는 그런 혜가의 의지에 감탄해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소림사의 스님들이 합장(合掌)을 할 때 한 손으로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일화 때문이다. 혜가 스님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피를 기억하기 위해 붉은 색의 가사(袈裟)를 입는다고 한다.
소림사에서 나와 길을 따라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탑림(塔林)이 있다. 탑림은 역대 고승들의 사리(舍利)를 모신, 거대한 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약 200여 기의 사리탑들이 세워져 있다. 모양도 크기도 다른 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탑 숲을 경건한 마음으로 천천히 걷는다. 나도 모르게 무념무상(無念無想)에 잠긴다. 속세를 떠난 착각에 빠져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피안(彼岸)의 세계를 소요한다.
세계문화유산인 소림사를 둘러 보고나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떠나려니 왠지 모르게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선종의 종찰(宗刹)인 이 사찰이 본래의 모습에서 지나치게 벗어나 무술 중심의 상업화된 모습 때문일까? 인간 본성을 찾아 수도하는 수도승의 거룩한 모습을 못내 아쉬워하며 산을 내려왔다..(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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