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궁여행기>
운대산(雲台山)
오늘은 오전 중에 하남성 박물관과 운대산을 관광하고 오후에는 낙양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먼저 하남성 박물관에 들러 고대 유물들을 살펴보았다. 하남성 박물관은 고대 황하 문명의 발상지인 이곳 황하 유역의 선사시대 출토품과 정주 시내에서 발견된 상대(商代)의 유물들을 현대식 시설에 잘 보존하고 있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정주 시내에서 북쪽으로 국도를 따라 한 동안 달려오니 황하 강이 보였다. 9㎞나 되는 긴 교량을 통과하면서 차창으로 유장히 흐르는 황하를 바라본다. 아시아에서 양자 강 다음으로 긴 5,460㎞의 몸을 이끌고 우리나라 황해 바다에 흙탕물을 쏟아 붓는 큰 강이다. 황하가 범람하면 그 주변 도시들을 휩쓸어 버리는데 이재민만 해도 우리나라 전체 인구수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황하 둔치에 파랗게 자라는 끝없는 밀밭은 그 가장자리가 무너져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2시간쯤 달려오니 앞쪽으로 거대한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항상 구름이 걸려있다는 운대산이다. 중국 10대 명산 중에서 3위에 오른 이 산은 세계 최초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으로 국가 1급 보호식물과 각종 희귀식물들이 많이 자라는 산이다.
산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시설이 굉장히 크고 입장절차도 까다롭다. 전자카드 입장권에 한 사람씩 지문 검색까지 하니, 아마도 지금 보이는 저 산 모습보다 더 빼어난 절경이 있을 듯하다.
체크인을 마치고 들어서니 바로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그 버스를 타고 20여 분 후에 도착한 곳은 커다란 입석에 붉은 글씨를 새겨놓은 홍석협(紅石峽)이다.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고개를 드니 가파른 산이 하늘 높이 삐죽삐죽 솟아 있고, 희뿌연 산허리에는 드문드문 하얀 산 벚꽃이 봄을 알리고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협곡 입구에 섰다. 온통 붉은 암벽이 깎아지른 듯이 좁게 마주 서 있고, 왼쪽 암벽 하단으로 터널처럼 잔도(棧道)를 만들어 두 사람들이 겨우 지나갈 수 있게 해놓았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기암괴석 사이로 옥빛 맑은 물이 부딪쳐 흐르는데, 물소리가 협곡을 음관(音管) 삼아 울리어 퍼지니 옆에 있는 친구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속이 보이지 않는 미로의 계곡을 찾아들어갈 때마다 기기묘묘한 홍석 작품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지구의 심장에서 솟구친 마그마가 마술사의 손을 거쳐 제작한 예술 조각품들의 전시장! 어느 조각가가 이처럼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고, 경이로운 작품을 빚을 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가슴이 텅 비어버리고 꿈인 듯, 환상인 듯, 감각을 상실하여 발길을 옮길 수 없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 몇 갈래 물줄기가 굽이쳐 흐르는 돌다리 위에 서서, 목을 한껏 뒤로 젖혀 하늘을 찾아본다. 파란 하늘이 높은 양쪽 암벽 사이로 강줄기처럼 그려져 있고, 붉은 돌홍예[石虹霓]로 된 잔교(棧橋)가 좁은 하늘 다리 되어 까마득히 이어져 있다.
다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갈래의 가늘고 긴 폭포수가 저 하늘 끝에서부터 쏟아져 내려 암벽 층층을 부딪고 부딪쳐서 고운 은가루가 되어 내 발 앞에 뿌려진다. 저쪽 실폭포 내려오는 붉은 돌기둥엔 물에 젖은 파릇한 이끼가 봄볕을 받아 더욱 선명하다.
아! 여기가 바로 선경(仙境)이로다! 거울처럼 맑은 저 물가에는 천사가 내려와 앉아 고운 날개옷 일렁이며 물을 긷고 있을 것 같고, 저쪽 아름다운 돌기둥 사이에서 긴 수염 날리며 신선이 걸어 나와 세상 시름 잊은 채 반석에 앉아 좌선(坐禪)을 하실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내가 깊은 땅 속으로 빠져 지구 내부를 걷는 것 같고, 갑자기 황홀한 천국에 초대받아 귀한 존재가 된 듯도 하다. 나는 오래도록 나를 잃었고, 친구들도 모두 이 비경(秘境)에 취해 넋을 놓고 있었다.
홍석협은 14억 년 전 지각 변동으로 조성된 자연의 예술품으로 협곡의 길이가 2,000m, 깊이가 68m, 폭은 좁은 곳이 3m, 넓은 곳은 10m이다. 이 협곡을 통과하려면 한 시간 이상의 트레킹이 필요하다.
땅 속에서 빠져나온 듯 힘겹게 돌계단에 올라서니 커다란 자방 댐이 눈앞을 가린다. 자방(子房) 호수는 중국인들에게 중원의 선경(仙境)으로 알려져 있고, 전한(前漢) 시대 장량(張良:장자방 張子房)이 이곳에서 군사 훈련을 시켜 후에 유방(劉邦)이 전한을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맑은 자방 호수에 운대산이 구름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떠 있다. 버스를 타고 운대산 수유봉(茱萸峰)에 오른다고 한다. 해발 1,308m 인 운대산은 매우 높지는 않지만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산 중에서 황산(黃山), 노산(盧山)에 이어 3위를 차지하는 명산이다. 웅장하고 가파른 이 산은 중국 신선으로 비유되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이 노닐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버스가 덜커덩거리며 가파른 꼬부랑 산길을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빠르게 달린다. 손잡이를 꽉 잡고 조심스레 차창 밖으로 내다보니 올라 온 길이 까마득한 절벽 아래 똬리를 틀고 있다. 승객 모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겁에 질려 좌석 손잡이를 더욱 다잡아 쥔다.
이때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 기사님들은 운전 실력이 최고입니다. 이 정도는 보통입니다. 밖을 내다보시면 천 길
낭떠러지입니다. 안전벨트를 매든 안 매든 굴렀다 하면 똑 같습니다.”
“올라가는 동안 터널이 많습니다. 몇 개인지 세어 보세요.”
해발 1,000m에 있는 수유봉 주차장까지는 조명 시설도 없는 캄캄한 터널이 길고 짧은 것을 모두 합하면 18곳이나 된다. 터널 안에서 마주 오는 버스와 용하게 교행 하는 것을 보니 도로 폭이 2차선은 될 것 같았다.
10만여 명의 인부가 13년 간 오직 인력으로 완공한 이 길은, 산 너머에 있는 마을로 빨리 가기 위해 낸 지름길이라 한다. 만리장성에서 보여준 중국인의 대륙기질과 강인한 의지와 장구한 뚝심은 여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중국 고사 열자 탕문편(列子 湯問篇)에 나오는 우공이산(禹公移山)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집 앞에 산이 있어 불편을 느낀 아흔이 다 된 노인이 집을 옮길 생각보다는 산을 옮기려고 삽질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자연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사고(思考)가 의지와 집념의 놀라움보다 우직하고 미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봉황의 뜻을 모르는 참새의 생각일까?
수유봉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도교 사원이 있다는 수유봉 정상까지는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오르지 못하고 몇 사람은 중간 전망대까지만 다녀왔다. 주차장 앞 수유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마치고 원숭이가 산다는 이 산 골짜기 여기저기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와 산 아랫마을에 있는 식당을 찾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여기서 두어 시간 남짓 걸린다는 낙양(洛陽)으로 늦지 않게 가려고 곧바로 출발하였는데 어느덧 평원의 낙조가 차창에 기웃거렸다. 네온 불빛이 반기는 낙양 거리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사지로 피로를 푼 후, 낙양 아향금령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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