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골백년/톳골의생활풍속

22. 벌초

주비세상 2009. 8. 3. 11:02

22. 벌초(伐草)

 

 처서가 지나면 모든 식물은 성장을 멈추고 겨울나기 준비를 한다.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리는 떨켜 세포가 작용하여 아름다운 단풍을 들게 한 후 자기 몸에서 잎을 분리시킨다. 제 몸을 깎는 아픔이다. 또 나무에는 얼음주머니 세포가 있어 나무의 수분을 겨우내 움켜잡고, 다음 해 봄, 싹을 틔울 때까지 수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신기한 자연의 세상살이다.

 

겨울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늘 도움을 받아온 조상들의 유택을 손질하여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나시도록 보살펴드리는 일을 잊지 않는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선영을 찾아 벌초하는 사람들이 이산 저산에 많이 보인다. 안석골에서는 선조 때부터 문중 토지를 경작하고 문중산과 산소 관리를 맡아 왔기 때문에 벌초할 묘지가 많다. 뒷구렁 큰 산소 3기는 방풍림에 둘러싸인 면적이 넓어 낫으로 작업을 하면 두 사람이 반나절은 해야 한다. 그리고 쌍용봉 아래 비석이 있는 산소 3기도 여간 넓은 면적이 아니다. 그리고 못 위 선조(22世 鍾憲公) 묘소, 수담 선조(24世 寬秀公) 묘소, 삼막골 선조(25世 大舜公) 묘소와 도계산 위탁받은 2기까지 모두 벌초를 끝내려면 4∼5일은 걸린다.

 

벌초 전에 조상님께 술 한 잔 올리고 예를 갖춘 뒤 분상에 난 잡초를 뽑고 주변에 난 어린 아카시아나 소나무, 떡갈나무 등을 뽑아낸다. 잔디를 깨끗이 깎아 겨우내 따뜻한 햇볕 받으시라고 많이 자란 방풍림 가지도 쳐준다. 상석과 망부석에 낀 이끼나 벌집을 털어내고 벤 풀을 거둬 모으고 돌아보면 살아계실 때 보살피시던 다정한 모습이 떠올라 상석 옆 잔디에 앉아 잠시 옛날 함께 생활하시던 모습을 떠올려본다. 인사를 올리고 이만큼 내려와 산소를 올려다보면 우거진 숲속에 깨끗이 다듬어진 유택(幽宅)이 포근하고 아름답게 보여 마음이 한없이 즐겁다. 나무들이 스스로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먼저 가신 조상님의 겨울나기를 위해 정성껏 벌초를 하는 모습은 이산 저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지금은 벌초 풍습도 많이 변하였다. 낫으로 하던 벌초를 예초기로 한다. 짧은 시간에 할 수 있어 좋기는 하나 조용하던 산골이 요란한 예초기 모터 소리로 조상님들의 심기를 어지럽힐까 걱정해본다. 더구나 산업 사회의 영향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묘지를 관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후손이 많아 농협에는 벌초를 대행해주는 신종 사업도 생겼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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