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골백년/톳골의생활풍속

20. 삼삼기

주비세상 2009. 8. 3. 10:58

20. 삼삼기 (續麻)

 

 음력 7월 15일에서 8월 15일까지는 톳골 농가는 좀 한가한 시기이다. 보리타작과 논매기나 조밭솎음이 끝나면 가을 추수철이 되기까지 크고 바쁜 일은 없는 편이다.

 

이때가 되면 삼밭에서 삼을 베고 탈곡기나 목도(木刀)로 삼 잎을 친다. 빨대처럼 가늘고 키가 큰 빽빽한 삼밭에 들어서면 아무리 키가 큰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연약한 삼 줄기는 고운 연둣빛을 내며 한 줌씩 잘려 삼단을 이룬다. 머릿결이 좋은 긴 머리를 가진 처녀를 보면 삼단 같은 머리를 출렁인다고 하는데 그럴듯하게 비유한 표현이다.

 

삼단은 너무 키가 크기 때문에 보통 솥에서는 쪄낼 수 없다. 큰마을에는 옹천역 앞의 송야천 변에 마을 공동으로 설치한 삼 찌는 가마가 있다. 톳골에서 삼단을 소바리에 가득 싣고 지고 이곳에 와서 찐다. 익힌 뜨거운 삼단은 송야천 흐르는 물에 푹 담갔다가 다시 톳골로 운반한다.

 

이 날 저녁에는 어른 아이 모두 마당에 둘러앉아 물에 젖은 커다란 삼단을 하나씩 놓고 삼 껍질을 벗긴다. 머리 부분을 먼저 까서 한 손에 쥐고 속대 사이에 엄지손가락을 넣어 꼬리 쪽으로 훑으면 훌러덩 벗겨지면서 하얀 속대가 앞쪽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 속대를 겨릅대(속칭:제릅)라고 한다. 겨릅대는 하얗고 속이 비어서 가볍다. 이것으로 발을 엮어 쓰거나 울타리를 만들기도 하며, 집을 지을 때 흙벽속의 외를 엮을 때도 사용한다.

 

삼베길쌈은 손이 많이 간다. 벗긴 삼을 말렸다가 다시 물에 불려 삼톱으로 겉껍질을 벗겨 버리고 속껍질만 모아 다시 말린다. 햇볕 잘 드는 빨랫줄에 널어놓은 속껍질은 고운 살갗을 연상하는 아름다운 색을 띄어 무척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것을 다시 물에 적셔 머리카락 보다 가는 실이 되게 쪼갠다. 이제 이 낟 실 하나하나를 연결해야 하는데 이 작업을 삼삼기(續麻)라고 한다.

 

머리카락 같은 삼을 한 줌 삼는데 몇 시간이 걸린다. 혼자앉아 이 고독한 작업을 해야 하는 여인들은 광주리에 하루 할 양을 담아 한 집에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일하는 방법을 택한다. 이것을 삼둘개(둘개:두레의 방언)라고 한다. 아침을 일찍 먹고 광주리에 그날 삼을 삼과 삼둑가지 그리고 점심 밥그릇을 담아 오늘은 웃톳골에서 내일은 아랫톳골에서 집을 바꾸어 모인다. 방에 들어가면 가운데를 향해 모인 수대로 삼둑가지를 놓고 삼을 이어 건 다음, 광주리를 옆에 놓고 한 쪽 무릎을 세워 앉는다. 올실 하나를 뽑아 입 속에서 침으로 부드럽게 추기며 올실의 굵기를 입술로 일정하게 감지하여 다음 실 끝과 겹치게 하여 감고, 세운 다리의 무릎에 대고 손바닥으로 비벼 올린 다음 이어졌는지 당기듯 확인하면서 광주리에 서린다.

혼자 외롭게 작업하는 지루함도 없어지고, 길쌈의 기능을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길쌈 둘개는 우리 농촌 여성들의 지혜로운 작업 방법으로 여름과 겨울철 농한기에 톳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작업풍경이다.

 

이렇게 삼은 삼을 다시 돌 것에 걸어 타래짓기를 하고 베를 맨 후, 베틀에 올리는데 이것이 날줄이 된다. 씨줄은 따로 꾸리를 빚어 만들어서 베를 짤 때 북에 넣어 사용한다. 이렇게 긴 시간과 정성으로 만든 삼베가 그 유명한 안동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지금은 톳골에서 이런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다만 그때 사용하던 연모들만 헛간이나 마루 밑에서 잠자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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