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골백년/톳골의생활풍속

21. 누에치기와 명주 길쌈

주비세상 2009. 8. 3. 11:00

21. 누에치기와 명주 길쌈

 

 모내기가 끝날 때면 밭둑마다 줄지어 심어 놓은 뽕나무도 제법 잎이 커진다. 1960년대 초반 정부에서 양잠 장려 정책이 시행되자 톳골 사람들은 밭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치기 수량을 늘렸고 누에고치를 농협에 납품하여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책이 바뀌자 뽕밭은 다시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토로 변했다.

누에치기는 봄, 여름, 초가을, 늦가을 등 일 년에 네 번 기를 수 있으나 톳골에서는 농한기인 5월 상순경에 시작하는 춘잠(春蠶)과 9월 상순에 시작하는 추잠(秋蠶), 두 번만 길러왔다. 기르는 기간은 약 한달 정도 , 실내 온도는 섭씨 27도에서 23도 정도로 유지해 야 잘 자라고, 먹이는 하루에 3,4회 주어야 한다.

 

주문한 누에 종자가 나오면 어둡고 서늘한 방 한 곳에 종이를 깔아놓고 어린누에가 알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린다. 놋 양푼에 깨끗한 종이를 깔고 어린누에를 받으면 보드라운 뽕잎만 골라 칼로 곱게 썰어 첫 먹이를 준다. 까맣게 곰실거리며 뽕을 먹는 유충은 차츰 자라면서 회백색으로 변한다. 누에가 조금 커지면 발에 올려 키운다. 많은 양을 키울 때면 안방, 건넌방, 사랑방, 골방까지 모두 누에 선반이 들어선다.

 

누에가 커서 석 잠을 자고 나면 뽕을 먹는 양도 대단하다. 아침먹이용 뽕은 식전 이슬을 맞으며 뽕을 쪄 와야 하고 점심, 저녁, 밤 먹이용은 들에서 일을 하고 식사하러 집에 올 때마다 지게에 가득지고 들어온다.

춘잠은 뽕을 딸 때 뽕나무를 가지째 자르고 집에 와서 뽕잎을 딴다. 그런데 추잠은 뽕나무 가지를 자르지 않아야 내년 봄에 새 잎을 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뽕나무에 매달려 뽕잎 하나하나를 따야한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뽕따러 가는 일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이기에 생각 많은 여인들이 뽕따는 일을 소재로 지어낸 가사는 재미있고 소망담긴 내용이 많다.

 

누에가 넉 잠을 자고 먹이를 싫어하면 몸뚱이가 누런빛으로 변하여 점점 투명해지는 듯하고 무른 똥을 배출한다. 이것을 익은누에, 즉 숙잠(熟蠶)이라고 부른다. 이때 잠발 위에 섶을 지어놓고 누에가 자기 집을 하얗게 짓도록 올려준다. 이틀이 지나면 섶은 하얀 고치로 변하여 방안이 눈부시게 된다. 누에가 고치 속에서 번데기로 변하는 것은 5일째 되는 날이다. 7일쯤 되면 고치는 손으로 눌러도 잘 꺼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진다. 그러면 고치를 하나씩 따서 깨끗하게 손질한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고치를 한 마당 널어놓으면 온 집이 환하게 조명을 받아 더욱 아름답다.

 

대부분의 고치는 농협의 수매에 응하고 집에서 할 길쌈거리만 조금 남긴다. 헛간 한 쪽에 작은 냄비 솥을 걸고 옆에 물레를 설치한다. 묵은 졸가리로 불을 지피고 솥에 물을 부어 고치를 알맞게 넣어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나뭇가지로 고치를 한 바퀴 휘저어 당기면 여러 개의 고치 표면에서 나온 아주 가느다란  실 가닥이 모여 명주실이 이어져 나온다. 이것을 물레에 걸어 실타래를 만든다. 고치 하나에서 1,200~1,500m의 실이 나온다고 한다.

 

보글보글 끓는 솥에서 보일듯 말듯 실이 모여 물레에 감기면 어느새 고치 속에 웅크린 번데기가 보인다. 번데기를 건져 내고 고치를 그 만큼 더 보충해 넣으면 실은 끝없이 이어져 물레에 감기게 된다. 솥 가에 건져놓은 따끈한 번데기는 아이들이 둘러 앉아 서로 먼저 집어먹는데 그 구수한 맛은 도시의 번데기장사 곁을 지날 때 느끼는 냄새 그대로이다.

 

명주 길쌈은 삼베보다 일손이 조금 적다. 뽑은 실을 나리고, 베 매고, 베 짜고 하는 일은 삼베와 같은 순서이다. 명주는 부잣집에서 한복 옷감으로 주로 사용하였다. 톳골에서도 웃어른들에게 명주 옷 한 벌 쯤은 기워드리지만 다른 식솔들은 엄두도 못 낸다. 혹 명주 한 필을 짜면 장롱 속에 깊이깊이 보관하였다가 논밭을 사든가 집안의 큰 행사 때 팔아서 경비를 충당하는 비상금으로 사용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옛부터 비단(silk)하면 부의 상징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고, 지금도 여성들의 최고급 옷감으로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에(silkworm)는 번데기에서 약 2주가 되면 나방이 나오는데 나방 한 마리가 600개 정도의 알을 낳아 번식한다. 누에를 기르면 부산물로 누에똥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가축의 사료, 녹색 염료, 발근 촉진제, 활성탄이나 연필심의 원료로도 쓰인다. 번데기는 흔히 식용으로 많이 쓰고, 사료, 고급 비누, 식용유 원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최근에는 누에에서 추출한 물질로 사람의 원기와 활력을 좋게 하는 건강 의약품도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으니 누에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유익한 벌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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