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골백년/톳골의생활풍속

23. 추석과 중구

주비세상 2009. 8. 3. 11:04

23. 추석과 중구

 

 톳골에서는 추석이 없었다. 대신 음력 9월 9일을 중구(重九), 또는 중양절(重陽節)이라 하여 차례를 올려왔다. 우리 나라는 홀수 달의 겹 일을 좋은 날로 손꼽아왔다. 1월 1일은 설날, 3월 3일은 삼짇날, 5월 5일은 단오절, 7월 7일은 칠석날, 9월 9일은 중양절이다.

 

톳골 지역의 기후로는 추석인 음력 8월 15일이 되어도 햇곡식을 장만하지 못한다. 그리고 과일도 덜 익는다. 그래서 농사를 잘 짓게 해주신 조상님께 햇곡식을 올릴 수 있는 날이 추석보다 20여일 늦은 중구일이다. 중구일이 되면 아직 한 포기도 추수하지 않은 논에 들어가 깨끗하고 잘 익은 올벼를 골라 제수용으로 쓸 만큼 벤다. 탈곡을 하여 디딜방아로 찧은 쌀로 송편을 빚고 메를 짓는다.

 

뒷구렁 산에 올라가 알밤을 주어 굵은 것으로 모아 놓고 감나무 높은 곳에 매달린 빨간 홍시를 골라 딴다. 대추는 붉은 점이 드문드문 찍힌 풋대추를 따고 배는 나무가 없으니 시장에서 구입한다. 어물전에 들러 대구포를 빛깔 좋은 것으로 고르고 생선 돔배기와 고등어, 문어, 가자미, 다시마를 정성껏 고르고 모자라는 탕()거리와 적()거리도 산다. 정육점에 들러 우회(牛膾)와 간, 천엽, 그리고 돼지 편육거리를 신선한 것으로 구입하고 집에서 준비하지 못한 콩나물, 두부, 유과도 산다. 제주(祭酒)는 막걸리를 준비하고, 닭은 집에서 기르던 것으로 잡아 쓰며, 나물 반찬과 전()을 부칠 채소는 밭에서 벌레 먹지 않은 것으로 골라 씻어 놓는다.

 

하루 전에 제물을 장만하기 위해 부녀자들이 모여 서로 한 가지씩 맡아 조리를 한다. 닭을 잡고, 어물을 장만하여 적(炙)을 꿰는 일, 밤 치는 일은 남자들이 하고, 송편 빚기, 전부치기 같은 것은 여자들이 맡아한다.

제물을 진설할 때는 우포좌혜(右脯左醯), 어동육서(魚東肉西), 동두서미(東頭西尾), 홍동백서(紅東白西) 등의 규칙을 대체로 따르는 편이며, 떡이나 생선, 과일, 나물 등을 진설할 때는 같은 종류를 보통 세 가지 정도 올리고 많아도 다섯 가지를 넘지 않게 차린다.

 

설이나 중구(추석) 차례는 종반간(宗班間)에 두루 참석하기 때문에 차례를 올리는 순서를 미리 정하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순차적으로 제례를 올린다. 안석골 본가에서 먼저 차례를 올리고 톳골, 큰마을, 연당골까지 일곱 댁을 모두 다니며 차례를 올리다보면 어둠이 내릴 때 쯤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롭기도 하여 지금은 아주 가까운 종반간만 모여서 차례를 드린다.

 

 차례 의식의 순서는 무축단헌(無祝單獻)이고, 첨작이 없으며, 합문계문이 없고, 숙수를 올리지 않는. 그러나 톳골에서는 선대로부터 기제사와 같은 순서로 올리고 있다. 먼저 제주가 분향(焚香)을 하고 조상을 모시는 강신(降神) 재배를 한다. 제관 모두가 인사를 드리는 참신(參神), 술 석 잔을 권하는 삼헌(三獻 : 初獻, 亞獻, 終獻), 첨작, 계반삽시정저(啓飯揷匙正箸) 후에 합문(闔門)하고 식사를 하시게 하는 유식(侑食), 식사가 끝나시면 숭늉을 대접하는 진숙수(進熟水), 그 후에 송별인사를 드리는 사신(辭神)의 순서로 조용하고 엄숙하게 진행된다.

톳골에서 본가의 차례가 끝나면 남자들은 지손댁(支孫宅) 차례 참여를 위해 떠나고 부녀자들은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매스컴이 발달하여 추석이 전국적인 명절이 되자 톳골에서도 1970년대부터 추석날에 차례를 올리고 성묘도 하고 있다.

'톳골백년 > 톳골의생활풍속'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 동지와 겨울 준비  (0) 2009.08.03
24. 시사(時祀)  (0) 2009.08.03
22. 벌초  (0) 2009.08.03
21. 누에치기와 명주 길쌈  (0) 2009.08.03
20. 삼삼기   (0) 2009.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