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시사(時祀)
조상을 섬기는 모습이 밖으로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성묘이다. 보통 한식 때 조상의 묘소를 살펴보고 겨울 동안 눈, 비, 바람, 그리고 산짐승들에 의해 묘지가 훼손되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손질을 한다. 가을이면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과 나무들로 뒤덮인 것을 깨끗이 베고 조상님이 따뜻한 겨울을 지내시도록 벌초를 한다.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은 후 조상님께 감사의 예를 올리기 위해 해마다 시월에 날짜를 정해 놓고 제사를 지낸다. 기제(忌祭)는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4대 제사를 각위 휘일(諱日;돌아가신 날)의 첫새벽 자시(子時:오후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에 지내는 제사이고, 시제(時祭)는 설이나 추석 때 4대를 동시에 지내는 제사이다. 4대 조상까지는 제사를 지내지만 5대 이상 조상들에게는 시월 보름을 전후 하여 산소에 찾아가서 묘제(墓祭)를 지내는데 이를 시제, 시사, 시향(時享), 묘사라고도 한다. 사정에 의해 오랜만에 선영을 찾아 인사드리는 것을 소분(掃墳)이라고도 한다.
안석골 본가에서는 문중 웃어른 시사인 큰톳골, 뒷구렁, 작산, 그리고 뒷밭 경작 댓가로 차리는 앞산 족친 묘소와 본가 선조 시사까지 모두 예닐곱 차례 시사 젯상을 차려야 한다. 시월 초하루부터 부엌에는 떡시루를 솥에 걸고 매일 시루떡을 쪄내고 부침개며 어물, 과일, 다식 등 아침마다 산소에 가져갈 제수품과 제물을 챙겨야 한다.
큰톳골 19세(世) 가선부호군 만웅공(晩雄公) 선영(先塋)이나 뒷구렁 20세(世) 취황공(就璜公) 배위(配位)와 21세(世) 사욱공(思郁公) 선산(先山) 시사를 지낼 때는 유건(儒巾)을 쓰고 도포(道袍)를 입은 제관(祭官)이 수두룩하고 흰 두루마기나 양복을 입은 제관, 청소년과 어린이 제관, 모두 합하면 백여 명 가까이 된다. 그만큼 후손이 번창하다는 것이다. 방풍림 우거진 숲 사이, 넓게 자리 잡은 묘소 앞에 하얀 두루마기나 도포를 입은 어른과 아이들이 도열하여 순서에 따라 잔디밭에 무릎을 꿇고 조상을 숭배하는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풍경이라 하겠다.
묘제를 지내기 전에 큰 산이면 먼저 산신제를 올린다. 산신은 지상에 있는 신이기 때문에 향을 피우지 않는다. 산신축(山神祝)을 읽고 단잔 헌배로 끝낸다. 묘제를 지낼 때 진설과 순서는 기제에 준하고 메(밥)와 갱(국)을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분향강신, 참신, 독축, 삼헌, 유식, 사신의 순서이다. 비가 오거나 악천후일 때는 집에서 제사를 올리는데 이것을 망제(望祭)라고 한다. 제례가 끝나면 명당에 연장자 순으로 자리를 잡아드리고 제사음식을 한 가지도 빼지 않고 사람 수에 따라 등분한 후 음복을 한다. 그리고 연로하여 참석하시지 못한 문장(門長)께는 따로 봉게(奉揭)를 싸서 보내드린다. 음복이 끝나면 웃어른들부터 하산을 한 뒤 젊은이들이 천천히 뒤따른다. 이때쯤이면 돌아보는 산마다 시사 제관들의 행렬을 자주 볼 수 있다.
시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대청마루에 가보면 바구니마다 시사 올리고 음복 받아 온 떡과 과일, 부침개가 넘치게 담겨있다. 정말 풍성하다. 그러나 조상을 섬기는 이런 미풍은 점점 줄어들고 요사이는 추석날이나 벌초할 때 성묘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가정이 많아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제례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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