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동지와 겨울 준비
일 년 중 가장 밤의 길이가 긴 날이 동지(冬至)이다. 동지는 양력으로 정해진다. 음력과 비교해서 동지 날짜가 음력 11월 초순이면 애기 동지, 중순이면 중(中)동지, 하순이면 노(老)동지라고 한다. 애기 동지일 때는 팥죽을 먹으면 아이들에게 해롭다고 하여 대신 팥시루떡을 해 먹인다고 한다. 궁궐에서는 이날 왕이 신하들에게 책력(달력)을 선물로 하사하신다.
동짓날 아침에는 팥죽을 먹는다. 붉은팥을 한 소쿠리 씻어 푹 삶아 으깨어 체로 거른 뒤에 솥에 넣고, 팥물이 풍덕풍덕 소리를 내 끓으면 찹쌀가루로 된 옹심이(새알심, 경단)를 메추리알 만하게 비벼 넣고 나무 주걱으로 젓는다. 붉은 색을 띈 곡식은 팥뿐이다. 붉은 색은 액을 쫓고 잡귀를 막는다고 한다. 팥죽을 쑤면 제일 먼저 소반에 수저와 함께 한 그릇 떠서 대청마루 천정 가까운 기둥에 모셔 놓은 성주님 앞에 놓는다. 할머니가 자리를 펴고 앉아 주문을 외우고, 가족의 건강과 가정의 평안을 담은 기원을 드리면서 두 손 모아 절을 한다. 기원이 끝나면 팥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벽에 뿌린다. 그리고 밖에 나와 대문이나 출입문 윗벽에도 한 숟가락씩 뿌린다. 시골집 외벽에 붉은 물 자국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른들은 방문마다 작년에 바른 문종이를 뜯어내고 새 창호지를 바른다. 문방 사이에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긴 문풍지도 넓게 붙인다. 손이 자주 가는 문고리 근처에는 한 겹 더 바르고 예쁜 나뭇잎을 넣어 무늬도 만든다.
이 시기에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에 바쁘다. 김장을 담그는 시기도 이때쯤이다. 배추를 씻어 2∼4등분한 후 왕소금 뿌려 하룻밤 동안 저리고 고춧가루, 마늘, 생강, 미나리, 갓, 젓갈 등을 버무려 양념을 만든다. 소금에 절여서 부드러워진 배추 잎 사이사이에 양념을 골고루 발라 넣고 겉잎으로 말아 싸서 독에 넣는다. 뜰에 해마다 묻어두는 김칫독 자리는 이미 정해져있다. 깊이 묻고 짚으로 이엉을 덮어 눈이나 빗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땅에 묻어 보관한 김치는 봄이 되어도 맛이 변하지 않고 늘 상큼한 맛을 유지한다. 도시의 김치 냉장고에 보관하는 김치맛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
동지가 지난 뒤, 날씨 좋은 날을 잡아 메주를 쑨다. 메주콩을 서너 말씩 씻어 너리기에 불린 다음 큰 솥에서 삶아낸다. 물을 알맞게 붓고 불 조절을 잘 해야 콩이 눋지 않고 잘 삶긴다. 공을 몇 솥 삶아내서 디딜방아에 풍덕풍덕 찧어 놓으면 콩알이 드문드문 남아 있다. 빈 쳇바퀴 안에 베보자기 깔고 찧은 콩을 알맞게 부어 싼 후, 두 발로 올라서서 찬찬히 밟으면 둥글넓적한 메주 덩어리가 나온다. 어떤 집에서는 이리 치고 저리 쳐서 목침 모양의 육면체를 만들기도 한다. 짚으로 여섯 갈래를 지어 메주덩이를 감싸듯 묶어 시렁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다. 짚 끈은 푸른곰팡이를 잘 번식 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밤늦도록 메주를 만들어 매달다보면 심심해서 하나씩 집어먹은 메주콩으로 배가 부르다. 시렁에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리면 힘든 일에 코고는 소리가 문 밖으로 흘러나간다. 내년 봄이면 이 메주로 된장을 담구고 간장을 뜨고 일 년 동안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식품이 된다. 장맛이 좋으면 그 집 음식 맛도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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