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골백년/톳골의생활풍속

19. 풋굿날

주비세상 2009. 8. 3. 10:57

19. 풋굿날

 

풋굿은 ‘호미씻기 날’의 안동 지방 방언으로 초연(草宴), 또는 머슴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해 농사를 거의 다 짓고 호미를 씻어 넣는다는 뜻이다. 농가의 바쁜 일손이 멎어지고 논매기가 끝나는 어정칠월이면 이제 가을 추수의 기쁨만 남아있다.

 

풋굿날은 마을 어른이 음력 7월 어느 날을 받아 정하던 것을 큰마을에서 정한대로 매년 양력 8월 15일로 고정해 놓았다. 주로 대농을 하는 집에서 봄부터 모내기, 보리추수, 조밭매기, 퇴비하기 등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일해 준 머슴(한 집에 소속된 일꾼)과 품앗이나 날품으로 자주 일을 해준 이웃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서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대접하고 그 동안 노고를 위로하고 하루를 쉬게 하는 날이다. 일꾼들에게는 이 날 하루가 명절인 셈이다.

 

이때쯤이면 논에 벼가 출수하기 시작하고 논둑과 밭둑을 모두 깨끗이 깎아 풀을 퇴비장에 모아놓는다. 자주 다니는 길도 이슬차지 않게 풀을 모두 깎아서 농촌 들녘이 깨끗이 다듬어 진다. 논에는 통통하게 배부른 벼가 소복이 솟아있고, 콩밭에는 꼬투리가 제법 불룩해지고, 수숫대가 고개를 숙인 체 고추잠자리를 태우고 바람에 일렁인다.

 

마당 가득 멍석을 깔고 교자상을 길게 붙여 음식을 차린다. 쌀밥에 미역 쇠고깃국, 검은콩 넣은 백편, 삶은 돼지고기, 감자송편, 깻잎전, 두부찌짐, 밀전병, 애호박전, 파전, 배추전, 부추전, 고구마전, 다시마전, 닭볶음, 오징어무침, 자반고등어, 문어회, 김, 해파리 무침, 홍어 무침, 칼치찜, 동태찜, 막걸리와 소주, 맥주, 쥬스, 메밀묵, 도토리묵, 감주 등 도시에서 보는 고귀한 요리는 아니지만 산해진미가 다 모여 실로 큰 잔치 음식이나 다름이 없다.

 

초대한 일꾼들이 하나, 둘 모이면 감사의 마음을 담는 막걸리잔이 분주히 움직이고 지난 농사일할 때 힘들었던 장면을 추억삼아 떠올리며 박장대소를 한다. 어느새 한쪽에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면 한 바탕 가무가 펼쳐진다. 물버지기(물자배기의 방언)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수수 빗자루로 북소리를 내고, 젓가락으로 높은 장단을 치면서, 어우러지는 신명나는 리듬은 앉아있는 사람을 일으키고, 서있는 사람을 춤추게 하는 묘한 흥을 일으켜 주인은 수박대접 철철 넘게 술을 권한다.

 

거나하게 흥에 취해 바람 쐬러 고샅에 나서면 깔끔하게 다듬어진 전답에 넘치는 풍요로움이 가슴 가득 밀려와 기쁨의 함성을 질러본다. 일꾼들이 추수하기 전에 일한 보람을 만끽해보는 하루가 풋굿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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