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목화밭
문익점(고려 공민왕, 1356) 선생이 원나라에서 붓 대롱에 목화씨를 가져오신 이 후, 톳골에서도 매년 목화를 심어 왔다. 음력 3월 하순 쯤 되면 보리 골 사이에 목화를 파종한다. 콩알 정도 굵기의 목화씨는 잘잘한 털이 씨앗을 덮고 있다. 짚재에 섞어 소독한 다음 밭에 뿌린다. 목화는 섬유질 성분을 많이 흡수하고 다른 영양분은 땅에 그대로 둔다. 그래서인지 목화밭에 배추를 드문드문 뿌려서 먹으면 그 맛이 다른 밭에서 가꾼 배추보다 월등히 달고 맛있다. 그래서 ‘명밭 배추’라면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목화는 다음 해 같은 곳에 심지 않고 몇 년 후에 심은 밭에 다시 심을 수 있다. 이것을 윤작(輪作:돌려짓기)이라고 한다.
보리를 베어내고 목화에 북을 준 후, 잎이 대여섯 장 나왔을 때 윗순을 지르고, 다시 가지가 두세 마디 뻗으면 어깨순을 잡는다. 음력 7월 중순쯤 되면 다섯 장의 하얀 꽃잎이 커다랗게 겹쳐 피어난다. 녹색의 바탕에 아기 손바닥만한 꽃잎이 가득 필 때면 말없이 명(=목화)밭 속을 거닐고 싶은 충동을 느껴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끌려 들어간다. 꽃이 지고나면 목화다래가 맺힌다. 어린 다래를 갈라보면 쫀득하고 몰랑한 속살이 나온다. 씨앗도 아직 물렁하다. 먹어보면 어느 과일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미롭고 부드러운 맛이 혀 끝에 감돈다. 간식으로 일품이다. 명밭 주인이 알면 야단날 일이지만 숨어서 한두 개 따먹는 것이니 더욱 달콤하다.
가을 추수가 시작되기 전인 음력 9월 상순이면 목화밭에는 아래가지부터 하얀 목화 솜꽃이 피어 장관을 이룬다. 다래끼를 메고 밭골을 차곡차곡 밟으며 한 송이씩 목화만 따 담는다. 무서리가 내리면 포기째 뽑아 산비탈에 널어 말렸다가 덜 핀 목화송이가 벌어지면 다시 목화를 딴다.
‘돌아라! 물레야, 물레야 돌아라!’
명을 씨아에 돌릴 때부터 활로 타고, 고치 비비고, 물레 잣을 때까지 온 집안은 보이지 않는 하얀 솜털로 가득 차있다. 행여 양복 입은 손님이 찾아오면 참으로 민망하다. 나갈 때는 검은 양복이 흰털로 덮여 털어도 털어도 떨어지지 않으니 이 일을 어찌하겠는가!
삼베처럼 실이 되기까지는 많은 손이 가고 정성을 들어야 곱고 우수한 무명이 탄생한다. 뽑은 실을 솥에 삶아서 나리고, 베 매고, 짜는 일은 삼베와 비슷하다. 지금은 목화를 따서 공장에 가면 모든 공정을 기계로 처리하지만 톳골에서는 오직 수공업의 방법밖에 없었다. 아들, 딸이 장성하여 혼사가 닥쳐 올 때면 그 해는 더 많이 목화를 재배하여 신혼방 비단금침에 넣을 이불솜을 마련하였고, 겨울 옷감으로 유일한 솜과 무명천은 가족들의 옷과 이불을 꾸미는데 사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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