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골백년/톳골의생활풍속

16. 한국 전쟁과 톳골

주비세상 2009. 8. 3. 10:47

16. 한국 전쟁과 톳골

 

6․25 전쟁은 톳골서에도 그 포성은 요란하였다. 전쟁 소식을 듣고

‘이 산골에서 어디로 더 피할 장소가 있느냐?’

던 톳골 사람들도 거의 뿔뿔이 흩어져 피난길을 떠났다. 어느 댁이 어디로 피난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안석골 가족은 긴급할 때 가족이 숨을 수 있는 방공호를 사랑채 뒤에 파 놓고 비행기 소리가 요란하면 모든 가족이 그 방공호 속에 들어가 초롱불을 끈 체 숨을 죽이곤 했다. 전쟁이 불리하다는 소식을 듣고 삼막골 여섯 마지기 논이 있는 북쪽 도랑가에 방공호를 미리 마련해 놓고 온 가족이 새벽 달빛 비칠 때 그 곳에 피난을 하여 한 동안 살기도 했다. 큰할머니는 끝내 피난하지 않으시고 두터운 토담으로 지은 사랑채에 눌러 앉으셨다.

 

삼막골 방공호에서 밤에 불빛이 비치지 않도록 입구를 가리고, 낮에는 밥 짓는 연기가 나지 않게 땔감을 골라 불을 지폈다. 산에 부딪칠 듯 낮게 산을 넘어 오는 비행기 소리에 미끄러져 다치기를 여러 번, 온 가족이 전투 상황을 알려고 귀를 기우렸다.

 

한 바탕 아군과 공산군이 접전을 치룬 곳이 톳골이다. 황새골 뒷산에서 아군이 넘어 오자 공산군이 안석골을 지나 구압산 쪽으로 향할 때 하늘에선 전투기가 폭격을 하고 지상에선 여러 가지 총소리가 산천을 뒤흔들었다. 논 가운데 폭탄이 터져 웅덩이가 몇 군데 생겼고 여러 종류의 탄피와 총알이 골짜기에 비 오듯 퍼부어졌다. 안석골 남쪽 산 계곡엔 공산군의 시신이 여러 구가 묻혀있다고 전해온다. 후퇴하며 안석골을 지나던 공산군과 아군이 번갈아 집으로 들어와서 밥을 지어주고 가슴 조이며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는데, 아마 이때가 아군이 반격 작전을 펼치던 한국 전쟁 후반인 듯하다.

 

전쟁이 끝나자 안석골 가족들은 모두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고, 그 외 다른 이웃들도 하나, 둘,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 용하게 피난을 잘했던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도 전쟁의 후유증으로 모두들 긴장하며 농사일을 조심조심 시작했다. 논밭에 뿌려진 탄알과 탄피를 주어내고 총탄 맞은 가옥을 수리하여도, 이웃과 서로 오가며 마음 편한 생활을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전쟁이 끝나고도 몇 년간 마을의 남자들은 목총을 들고 민병대 훈련을 받으러 학교에 모이기도 했다. 전쟁은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없어야 할 무섭고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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