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오월 단오(端午)
처음 단오는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던 제삿날이었으나, 차츰 농촌의 명절로 자리 잡아 해마다 기다려지는 날이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다. 단오는 수릿날이라고도 불렀는데 수리의 뜻은 고상신(高上神)을 의미하는 우리의 고어다. 즉 최고의 날이란 뜻이다.
단오가 다가오면 며칠 전 부터 대여섯 묶음의 짚단을 추려 도랑물에 담구고 무거운 돌을 올려 푹 잠기게 해 놓고, 논둑 가래질일을 마친 저녁이면 물 삐게 짚단을 건졌다가 저녁 식사가 끝나면 하나, 둘, 초롱불 들고 감나무 밑으로 모인다. 그넷줄을 꼬는 모임이다. 짚으로 엮은 그넷줄은 어른 서너 명의 몸무게를 견딜 수 있게 굵게 꼬아야 끊어지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그넷줄을 어른 손으로 쥐어도 한 손아귀가 넘는다. 감나무에 시작 부분을 매달고 짚을 서너 가닥을 내어 가닥마다 한 사람씩 잡고 탱탱하게 감고, 꼬는 방향으로 손바꿈한다. 힘껏 돌려주면서 짚을 연이어 보충해 나가면 굵은 동아줄이 차츰차츰 꼬여 나온다. 꼬아낸 줄을 한 사람이 감나무 가지에 걸친채 잡고 있으면 일 소리에 저절로 장단이 맞추어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그네 맬 나뭇가지 높이의 두 배가 넘게 꼬았으면 그넷줄을 서려놓고 나무에 줄을 매기까지 축축하도록 물을 뿌려 그늘 진 곳에 거적을 덮어둔다. 단오 전날 저녁때쯤 청년들은 다시 모여 동네 앞, 해마다 그네를 매던 소나무 밑으로 줄을 옮긴다. 나무 잘 타는 사람이 가느다란 긴 새끼줄을 허리에 차고 올라가 굵은 그넷줄을 당겨 올리고 능숙하게 묶은 뒤 다람쥐처럼 그넷줄을 타고 내려온다.
그리고는 두 뼘 남짓한 길이의 두 막대에 새끼줄을 팔자로 감싸서 만든 그네 발판을 올려놓고, 그넷줄을 맨 사람이 제일 먼저 시험 그네를 뛴다. 또 두 사람이 올라서서 조심조심 쌍그네를 뛴다. 매듭 부분을 쳐다보면서 찬찬히 안전 점검을 하고 이상이 없으면 그넷줄을 한 바퀴 휘감아둔다.
단오날이 가까이 되면 톳골의 여인들은 톳골못가에 지천으로 돋아나는 창포를 베어 가마솥에 물을 가득 붓고 삶아낸 물에 머리를 감아 부드러운 머릿결과 향기를 유지한다. 거울 앞에 앉은 여인은 조용히 마음까지 가지런히 빗어 내리면서 우아한 자태에 스스로 흐뭇한 미소를 지어본다.
단오날 아침이면 담장 밑에 심어 가꾸어오던 궁궁이 잎을 뜯어 머리에 단정히 꽂고 치마저고리 여미며 그네 밑으로 간다. 먼저 나온 사람이 그네를 타면 웃톳골, 아랫톳골 여자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안석골 그네 밑으로 모여든다.
짙푸른 산색에 밝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휘어지는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미끄러지듯 오르고 내리는 그넷줄 따라 시선을 옮기면서 쏟아내는 즐거운 비명소리와 웃음소리는 한 동안 적막하던 들녘을 흔들어 놓는다.
한 차례 그네를 모두 뛴 다음 안석골 대청마루에 모여 앉으면 어느새 소반에 쑥떡과 빨갛게 익은 앵두가 가득 차려 나온다.
톳골 들녘엔 발끝마다 밟히는 풀이 쑥이다. 이른 봄, 파릇파릇 참쑥이 돋으면 틈틈이 뜯어서 콩가루 듬뿍 풀어 입맛 돋우는 쑥국을 끓여 먹거나, 밀가루 하얗게 버무려 쑥털털이를 만들어 먹으면 입맛 잃은 사람에게는 그저 그만이다. 쑥떡을 하기 위해서는 쑥을 뜯어 볕 잘 드는 곳에 장대 나란히 놓고, 그 위에 큼직한 발을 펴서 널어 말린다. 마른 쑥은 짚 끈으로 사방 묶어 동글동글한 묶음으로 고방 시렁 위에 쌓아 둔다. 단오 며칠 전부터 마른 쑥을 삶아서 너리기(자배기의 방언)에 푹 담가 쑥의 쓴 맛을 우려낸다. 멥쌀과 찹쌀을 섞어 담갔다가 디딜방아에 찧는데 호박의 쌀가루가 거의 없어질 때까지 고운 체로 치면서 손으로 계속 덖는다.
쑥을 건져 떡가루와 고루 섞어 큰 솥에 물을 붓고 겅그레 위에 찜 보자기를 깔고 불을 땐다. 솥뚜껑 사이로 김 나오는 소리가 휘파람을 요란하게 불면 한참 기다렸다가 들어낸다. 마당에는 벌써부터 짚을 깔고 안반을 펴놓고 떡메꾼이 미리 대기하고 있다. 찜 보자기째 들고 나와 식기 전에 엉기게 떡메질을 한다. 떡에 찰기가 붙으면 안반 위에 부어 더 세게 친다. 떡은 떡메질을 많이 할수록 쫀득하고 맛있다. 그래서 떡을 치대는 이의 허락이 날 때까지 떡메꾼이 번갈아 들어와야 하고 떡치는 소리가 크게 나야 힘쓰는 남정네로 칭찬을 받는다. 떡메 소리가 멈추면 미리 준비한 볶은 콩가루를 넓은 양푼에 부어 놓고, 빚는 모양 다양하게 콩가루에 무쳐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 톳골의 쑥떡이다. 물론 쑥절편도 참기름 발라 따로 담는다. 오래 보관할 여분 쑥떡은 축구공 만하게 뭉쳐서 광주리에 담아 바람 잘 통하는
봄과 여름 사이에 단오가 있다. 이때쯤이면 여름 옷차림에 부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옛날 궁궐에서는 단오날이 되면 왕이 신하들에게 부채를 선물하는데 이를 단오선이라고 한다.
쑥떡으로 요기를 하고 부채와 양산으로 햇볕을 가리면서 모두 큰마을로 넘어간다. 큰마을에서는 해마다 그네뛰기, 씨름, 노래자랑을 하였다. 추천(鞦韆)대회와 씨름대회는 옹천 장터에 준비하고, 노래자랑은 큰마을 뒷산 소나무밭에 대회장을 마련한다. 북후면 사람들은 해마다 이 행사에 기대를 걸고 남몰래 씨름 기술을 익히고 노래 연습을 하는 분도 많았다. 물론 입상자에게는 푸짐한 상품이 주어지고 마을 사람들과 밤늦도록 흥겨운 축하연을 벌인다. 이 날은 하루 종일 구경 다니기 바쁘고, 함께 참여하니 즐겁고, 함께 어우러지니 흥겨운 최고의 날이
지금은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로 단오날이 되어도 그때의 풍성한 구경거리는 찾아 볼 수 없고, 몇몇 어른이 모시옷에 부채를 들고 궁궁이 풀을 꽂은 하얀 중절모를 쓴 체, 옛날 추억을 회상하는 모습만 간혹 보여 아쉬운 마음이 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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