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숙(漢文學塾)/한문용어[典故] 102

75. 實事求是(실사구시)

'실질적인 일에서 옳음을 구한다'라는 의미이다. 실질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중국의 ≪한서(漢書)≫ 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에 나오는 말이다 눈으로 직접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는 것처럼 실험과 연구를 거쳐 정확한 해답을 얻는 것과 같다. 청나라 초기의 고증학자들이 공리공론의 성리학을 배격하여 내세운 학문 방법이다. 주관적인 해석이나 공허한 이론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항상 실질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판단하려는 태도이다. 이러한 실사구시의 원칙은 발전과 성장을 위한 핵심적인 사상이다.   실질을 추구하게 되면 기존의 관습이나 형식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실질주의는 계속해서 무엇 인가를 시도하고 행동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말보다 행동을, 이론보다 실천을 강조하게 되는..

74. 管鮑之交(관포지교)

이글의 관(管)과 포(鮑)는 두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의 약자다. 즉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사귐’이란 뜻으로, 우정(友情)이 아주 돈독(敦篤)한 친구(親舊) 관계(關係)를 이르는 말이다.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는 죽마고우(竹馬故友)로 둘도 없는 친구(親舊)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포숙아(鮑叔牙)는 관중(管仲)의 범상(凡常)치 않은 재능(才能)을 간파(看破)하고 있었으며, 관중(管仲)은 포숙아(鮑叔牙)를 이해(理解)하고 불평(不平) 한마디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벼슬길에 올랐으나, 본의(本意) 아니게 적(敵)이 되었다. 규(糾)의 아우 소백(小白)은 제나라(齊--)의 새 군주(君主)가 되어 환공(桓公)이..

73. 因果應報(인과응보)

풀이하면 '원인(因)이 있으면 결과(果)는 반드시 뒤따른다'란 뜻이다. 즉선(善)을 행하면 선의 결과가, 악(惡)을 행하면 악의 결과가 반드시 뒤따른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과보(果報)를 반드시 받게 된다는 말이다. 과거 또는 전생의 선악 인연에 따라서 훗날 길흉화복의 갚음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본래 이 용어는 불교에서 유입된 불교 용어로써, 현장법사의 제자 혜립(慧立)이 쓴 현장법사의 일대기 『대자은사삼장법사전』에 처음 나온다. "바라건대 현묘한 도를 얘기함에 있어서, 원인에 따른 결과로 응당 보답됨을 묻습니다. (唯談玄論道, 問因果應報)"에서 유래되었다.비슷한 말로 종과득과 종두득두( 種瓜得瓜 種豆得豆)란 말이 있다. 곧 오이 심은 데 오이 나고,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

72. 畵龍點睛(화룡점정)

이 말은 '용을 그린 후 마지막으로 눈을 그리는 것'이라는 뜻으로 무슨 일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시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의 유래는 당서(唐書) 수형기(水衡記)에 나오는 얘기다.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양나라에 장승요라는 인물이 있었다. 장군과 태수 등의 벼슬을 지낸 그는 이후 사직하고 오직 그림만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락사란 절에서 절 벽면에 용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장승요가 붓을 든 후 시간이 갈수록 하늘로 솟아오르려는 용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그 솜씨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림이 완성된 후에도 용의 눈이 없었던 것이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장승요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71. 麥秀之嘆(맥수지탄)

글자를 풀이하면 '보리가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한다.'는 뜻이다. 한 가문이 멸문의 화를 입거나 나라가 기강이 무너져내려 멸망하는 것을 탄식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말의 유래는 중국 역사서인 사기(史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은(殷.商)나라의 임금 주왕(紂王)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인 달기(妲己)와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정치를  팽개치고 폭정을 일삼았다.  당시 주왕에게 충신이 있었는데,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이 그들이었다. 주왕의 서형(庶兄·배 다른 형)이기도 했던 미자는 자신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그러자 태사(太師) 기자와 소사(小師) 비간이 적극 만류했다. “자결로 임금이 바른 정치를 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

70. 金城湯池(금성탕지)

한자의 뜻은 '쇠로 세운 성과 뜨거운 물로 가득 찬 성 둘레의 못(해자垓子)'이라는 뜻으로, 방어 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공격하기 어려운 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용어로 금성철벽(金城鐵壁). 요새(要塞). 철옹성(鐵瓮城)등이 쓰인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나라의 진시황이 죽고 2세가 즉위하자 옛 육국의 땅에서 난이 일어나 군현의 장을 죽이고 각자가 왕이 되었다. 그중 무신이라는 자가 조의 옛 땅을 평정하고 무신군이라 했다. 지방 수령들은 공포에 떨며 자기를 보호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이를 본 괴통(蒯通)이라는 책사가 현령인 서공(徐公)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공께서 지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지만 저의 말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행복하게 될 수 있습니다."서공은 괴통의 말에 관심을..

69. 移木之信(이목지신)

뜻을 풀이하면 '나무를 옮기게 하는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들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남을 속이지 않거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말이다.  중국 역사서인 사기(史記)의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오는 이 말의 고사는 위정자가 백성과 맺는 신의(信義)에 관한 것이다. 진(秦)의 효공(孝公)에게는 상앙(商鞅)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상앙은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이었으며, 법률에 밝았다. 상앙이 표방한 것은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부국강병책이었는데, 이것은 훗날 시황제가 천하 통일을 할 수 있었던 기틀이 되었다. 상앙이 한 번은 법을 제정해 놓고 공포를 하지 않았다. 백성들의 불신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상앙은 백성들의 불신을 없애기 위한 계책을 세웠다. 상앙은 3장(약 ..

68. 낭중지추(囊中之錐)

글자를 직역하면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이란 뜻이다. 송곳은 끝이 뾰족하여 밖으로 잘 튀어나온다. 곧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은 숨기려 해도 저절로 드러난다는 비유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사기(史記)의 평원군전(平原君傳)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말엽,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宰相)인 평원군(平原君)을 초(楚)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必要)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食客)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명을 뽑지 못한 채 고심했다.  이때에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나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하고 나섰다. 평원군은 어이없어하며  "그대는 내 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하고 물었다. ..

67. 풍수지탄(風樹之歎)

글자의 뜻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탄식' 으로 풀이된다. 그 숨은 의미는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자식의 슬픔'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 135년 중국 한나라 학자 한영(韓嬰)이 저술한 《한시외전(韓詩外傳)》 제9권에 나오는 이야기다. 공자가 자기 뜻을 펴기 위해 떠돌아다니던 시절, 어디선가 누군가 우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다가가보니 당사자는 고어(皐魚)라는 사람이었고, 그 까닭을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저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습니다. 첫째는 공부를 한다고 집을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와 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뜬 것이며, 둘째는 저를 받아줄 군주를 어디서도 만나지 못한 것이며, 셋째는 서로 속마음을 터놓던 친구와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

66. 駟不及舌 (사불급설)

글자를 풀이하면  '아무리 빠른 사두마차(駟馬:사마)라도 혀를 놀려서 하는 말을 따르지 못한다' 는 뜻이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지는 것이므로 말을 조심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사마난추(駟馬難追)→입에서 나온 말은 사두마차도 따르기 힘든다 •언비천리(言飛千里)→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악사천리(惡事千里)→나쁜 소문은 세상에 빨리 퍼진다. 가 있다.   공자의 가르침을 적은 논어(論語)의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말이다. 위(衛)나라 대부(大夫) 극자성(棘子成)과 언변과 이재(理財)에 뛰어난 자공(子貢)과의 대화에서 유래한다. 극자성이 자공에게, “군자는 그 바탕만 세우면 그만이지 무슨 까닭으로 문(文)이 필요한가요?” 라고 물었다. 이에 자공이  "안타깝습니다. 당신의 말은 군자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