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숙(漢文學塾)/한문용어[典故] 105

78. 刮目相對(괄목상대)

글자를 풀이하면 ‘눈을 비비고 상대편(相對便)을 본다.’ 는 뜻으로, 남의 학식(學識)이나 재주가 놀랄 만큼 부쩍 늚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중국의 에서 명장으로 손꼽히는 촉(蜀)나라의 관우(關羽)를 사로잡는 공을 세운 것으로 유명한 오(吳)나라 장수 여몽(呂蒙) 이 한 말에서 유래되었다. 오나라(吳--) 왕인 손권(孫權)의부하 중에 무술이 뛰어난 여몽(呂蒙)이라는 장수(將帥)가 있었다. 병졸(兵卒)에서 전쟁(戰爭)의 공(功)으로 장군(將軍)까지 된 여몽(呂蒙)이었으나 무식(無識)했다.  그러나 손권(孫權)은 그가 이론적(理論的)인 병법(兵法)까지 알기를 원해서 학문(學問)을 깨우치도록 충고(忠告)를 했다. 이때부터 그는 전장(戰場)에서도 손에서 책(冊)을 놓지 않고 공부(工夫)했다.   얼마 후 ..

77. 破邪顯正(파사현정)

이 말의 뜻은  '삿된 견해를 논파하여 올바름에 해당하는 중도(中道) 또는 공(空)을 드러낸다' 는 불교용어이다.  불교 삼론종에서 강조하는 진속이제(眞俗二諦)나 팔부중도와 달리 대중화된 파사현정은 자기 종파를 옹호하기 위해서 출발한 것이지만 선종(禪宗)의 활약 덕분에 관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원래 중관사상에서 뜻하는 파사는 자신의 주장을 세우는 것이 아닌 논박자의 망상과 아집을 버리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붓다의 가르침인 중도의 추구를 그 목적으로 한다.  공사상을 체계화시키며 등장한 중관학파의 비판주의가 한역 경전권의 관용어가 되어왔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은 파사즉현정 (破邪卽顯正) , 파현 (破顯) , 파신(破新) 이라고도 한다.  길장이 지은 『삼론현의』는 파사와 현정이라는 구조로 되어 있다..

76. 見危授命(견위수명)

글자대로 풀이하면 '위험(危險)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나 이면의 뜻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친다'는 뜻이다. 견위치명(見危致命)이라고도 한다.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에 나온다. 자로(子路)가 성인(成人)에 대해 묻자, 공자(孔子)는 지혜·청렴·용기·재예·예악(禮樂)을 두루 갖춘 사람이 성인이라고 대답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인이야 어찌 반드시 그러하겠는가? 이로움을 보면 대의(大義)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 전의 약속을 평생의 말(약속)로 여겨 잊지 않는다면, 또한 마땅히 성인이라 할 수 있다.(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 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공자는 여기서 지금의 성인은 옛날의 성인에는 ..

75. 實事求是(실사구시)

'실질적인 일에서 옳음을 구한다'라는 의미이다. 실질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중국의 ≪한서(漢書)≫ 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에 나오는 말이다 눈으로 직접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는 것처럼 실험과 연구를 거쳐 정확한 해답을 얻는 것과 같다. 청나라 초기의 고증학자들이 공리공론의 성리학을 배격하여 내세운 학문 방법이다. 주관적인 해석이나 공허한 이론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항상 실질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판단하려는 태도이다. 이러한 실사구시의 원칙은 발전과 성장을 위한 핵심적인 사상이다.   실질을 추구하게 되면 기존의 관습이나 형식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실질주의는 계속해서 무엇 인가를 시도하고 행동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말보다 행동을, 이론보다 실천을 강조하게 되는..

74. 管鮑之交(관포지교)

이글의 관(管)과 포(鮑)는 두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의 약자다. 즉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사귐’이란 뜻으로, 우정(友情)이 아주 돈독(敦篤)한 친구(親舊) 관계(關係)를 이르는 말이다.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는 죽마고우(竹馬故友)로 둘도 없는 친구(親舊)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포숙아(鮑叔牙)는 관중(管仲)의 범상(凡常)치 않은 재능(才能)을 간파(看破)하고 있었으며, 관중(管仲)은 포숙아(鮑叔牙)를 이해(理解)하고 불평(不平) 한마디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벼슬길에 올랐으나, 본의(本意) 아니게 적(敵)이 되었다. 규(糾)의 아우 소백(小白)은 제나라(齊--)의 새 군주(君主)가 되어 환공(桓公)이..

73. 因果應報(인과응보)

풀이하면 '원인(因)이 있으면 결과(果)는 반드시 뒤따른다'란 뜻이다. 즉선(善)을 행하면 선의 결과가, 악(惡)을 행하면 악의 결과가 반드시 뒤따른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과보(果報)를 반드시 받게 된다는 말이다. 과거 또는 전생의 선악 인연에 따라서 훗날 길흉화복의 갚음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본래 이 용어는 불교에서 유입된 불교 용어로써, 현장법사의 제자 혜립(慧立)이 쓴 현장법사의 일대기 『대자은사삼장법사전』에 처음 나온다. "바라건대 현묘한 도를 얘기함에 있어서, 원인에 따른 결과로 응당 보답됨을 묻습니다. (唯談玄論道, 問因果應報)"에서 유래되었다.비슷한 말로 종과득과 종두득두( 種瓜得瓜 種豆得豆)란 말이 있다. 곧 오이 심은 데 오이 나고,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

72. 畵龍點睛(화룡점정)

이 말은 '용을 그린 후 마지막으로 눈을 그리는 것'이라는 뜻으로 무슨 일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시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의 유래는 당서(唐書) 수형기(水衡記)에 나오는 얘기다.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양나라에 장승요라는 인물이 있었다. 장군과 태수 등의 벼슬을 지낸 그는 이후 사직하고 오직 그림만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락사란 절에서 절 벽면에 용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장승요가 붓을 든 후 시간이 갈수록 하늘로 솟아오르려는 용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그 솜씨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림이 완성된 후에도 용의 눈이 없었던 것이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장승요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71. 麥秀之嘆(맥수지탄)

글자를 풀이하면 '보리가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한다.'는 뜻이다. 한 가문이 멸문의 화를 입거나 나라가 기강이 무너져내려 멸망하는 것을 탄식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말의 유래는 중국 역사서인 사기(史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은(殷.商)나라의 임금 주왕(紂王)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인 달기(妲己)와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정치를  팽개치고 폭정을 일삼았다.  당시 주왕에게 충신이 있었는데,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이 그들이었다. 주왕의 서형(庶兄·배 다른 형)이기도 했던 미자는 자신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그러자 태사(太師) 기자와 소사(小師) 비간이 적극 만류했다. “자결로 임금이 바른 정치를 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

70. 金城湯池(금성탕지)

한자의 뜻은 '쇠로 세운 성과 뜨거운 물로 가득 찬 성 둘레의 못(해자垓子)'이라는 뜻으로, 방어 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공격하기 어려운 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용어로 금성철벽(金城鐵壁). 요새(要塞). 철옹성(鐵瓮城)등이 쓰인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나라의 진시황이 죽고 2세가 즉위하자 옛 육국의 땅에서 난이 일어나 군현의 장을 죽이고 각자가 왕이 되었다. 그중 무신이라는 자가 조의 옛 땅을 평정하고 무신군이라 했다. 지방 수령들은 공포에 떨며 자기를 보호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이를 본 괴통(蒯通)이라는 책사가 현령인 서공(徐公)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공께서 지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지만 저의 말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행복하게 될 수 있습니다."서공은 괴통의 말에 관심을..

69. 移木之信(이목지신)

뜻을 풀이하면 '나무를 옮기게 하는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들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남을 속이지 않거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말이다.  중국 역사서인 사기(史記)의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오는 이 말의 고사는 위정자가 백성과 맺는 신의(信義)에 관한 것이다. 진(秦)의 효공(孝公)에게는 상앙(商鞅)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상앙은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이었으며, 법률에 밝았다. 상앙이 표방한 것은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부국강병책이었는데, 이것은 훗날 시황제가 천하 통일을 할 수 있었던 기틀이 되었다. 상앙이 한 번은 법을 제정해 놓고 공포를 하지 않았다. 백성들의 불신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상앙은 백성들의 불신을 없애기 위한 계책을 세웠다. 상앙은 3장(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