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비글마당/흙살깊은골짜기<편지>

조카님 보시게

주비세상 2022. 5. 13. 14:36

조카님,
얼마나 애통하시겠는가?
나는 형님내외분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허망하고 허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톳골 하늘만 바라보며 그리움에 잠겨 시간을 보내고 있다네.
내 마음이 이러한데,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잃은 조카님의 마음이야 그 얼마나 찢어지듯 괴롭겠는가? 천붕지괴(天崩地壞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의 심정이리라 생각하네.

그런데도 상주 삼형제가 서로 돕고 의논하여 지혜롭게 喪禮를 여법하게 치루시는 것을 보고 숙부는 너무나 고맙고 대견스러웠네.
大事 後에는 아무리 잘 하여도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고, 정성껏 禮를 다 하여도 아쉬움이 남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심일세. 그리고 많은 조문객을 대하는 접빈의 예는 누군가에게는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니 어쩔 수 없이 인내해야 하는 것은 喪主의 몫일세.
사후의 일들은 너무 조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천천히 시간이 흐른 뒤에 부모님의 유지를 받들어 충분히 숙고한 후에 선조들께 욕되지 않게 자네들이 잘 이끌어 가리라고 나는 믿네.

조카님은 높은 학식과 충분한 사회생활 경험과 사리분별의 경륜을 쌓은 지성인이기에 결코 경망스럽지 않을 것으로 숙부는 믿고 있네.
상례를 치루는 동안 극심한 괴로움과 갈등, 불안과 스트레스로 한 동안 사회생활에 적응이 힘들어 대인기피현상도 생기기도 한다네. 그런 현상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족 친지 모두가 겪는 마음이니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여 우울한 마음을 극복하도록 해야한다네. 나 역시 양친상을 당하였을 때 1년이상 우울증약을 복용하였고 지금도 마음이 불안할 때는 약을 먹고 있다네.

인간사 모두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하네. 그 인내의 시간을 줄이려면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더러 미운 사람이 있더라도 용서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빠른 치유의 길이라고 하네. 어렵기는 해도 남을 고치려하지 말고 내 마음을 먼저 바꾸는 것이 가장 쉽고 편안한 방법이라네. 사람은 스스로 참을 수 있고, 스스로 자신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이성의 동물이라 말한다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은 가족과 친지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가장 가까이 지내고, 가장 잘 아는 사이기 때문에 다툼도 많고, 시기도 많지만, 가족과 친지는 어떤 경우라도 경쟁의 대상이 아니고, 적대시할 상대도 아니라네. 오직 서로 돕고 의지하며 내가 안식할 수 있는 사람일뿐이라네. 그러기에 기쁜 일에도, 슬픈 일에도, 하소연할 때도 가족과 친척을 찾게되지 않는가? 제일 먼저 내 가족을 소중히 하고 사랑해야 한다네.
자네 조부께서는 평생토록 이웃과 친지들에게 인정을 나누시어 독가촌에 사시면서도 수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셨네. 옛말에 묘비의 좋은글보다 산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더 중요하다고 했네.

인생을 살다보면 가슴 아픈 일이 어디 한 두 번 뿐이겠는가?
이 슬픔을 지혜롭게 이겨내면 다시 평상심을 찾게 될 것이고, 그 다음엔 날마다 즐거운 시간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다네.
힘내고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살아가시게.

형님내외분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叔父 聲茂 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