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골백년/톳골의생활풍속

12. 정월대보름맞이

주비세상 2009. 8. 3. 10:38

12. 정월대보름맞이

 

 설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 약 15일간 톳골 사람들은 어떤 농사일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마을을 다니며, 노인들은 노인들끼리, 부인들은 부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즐겁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기본적인 의식주에 관한 일과 가축을 돌보는 일 이외에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행복한 시간이지만 이런 시간도 정월 대보름날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

 

휴식의 마지막 날인 정월대보름날 아침에도 몇 가지 풍습이 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머리맡에 준비해 놓은 견과류(밤,호두. 땅콩 등)를 입에 넣고 단번에 부수어야 하는 부럼 깨물기가 있다. 옛날에는 피부 부스럼이나 버짐이 많았는데 견과류에는 이런 부스럼을 막아주는 영양소가 쌀보다 수십 배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한 해 동안 부스럼을 예방해 보자는 조상들의 지혜가 명절 풍습 속에 스며있는 것이다.

 

보름날 아침에는 며칠 전부터 준비해 둔, 화기 좋은 땔감인 묵은 졸가리와 솔가리(속칭:갈비)를 써서 찰밥(오곡밥)을 짓고 나물 반찬을 여러 가지 준비한다. 육류나 생선을 거의 올리지 않는다. 오곡(五穀)인 찹쌀, 보리, 수수, 팥, 차조(또는 지장)와 오과(五果)인 호두, 은행, 밤, 대추, 곶감을 넣어 흔히 말하는 오곡밥을 짓고, 국은 무와 콩나물, 시래기를 콩가루에 버무려 끓여내며 접시마다 김, 피마자 잎, 가지, 호박, 시래기, 곤취 등의 나물 반찬을 들기름이나 참기름에 볶아서 차린다.

 

이 날은 특별히 수저 옆에 맑은 술이 담긴 술잔이 어김없이 올라와 있다. 수저를 들기 전에 이 술을 먼저 마셔야 한다. 이 술이 한 해 동안 귀를 밝게 하여 좋은 소리만 들으라는 의미의 귀밝이술이다. 이런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부녀자들에게도 마시게 한다. 이렇게 보름날만이라도 묶은 나물 반찬을 먹는 것은 긴 겨울 동안 없어진 입맛을 살리기 위한 풍습이라고 한다.

 

톳골에서는 또 하나의 보름날 이벤트가 있다. 하루 전에 아이들은 자기 집에서 수수깡으로 모형 보리를 50개나 100개 정도 만든다. 그리고 열나흘 날 밤에 마당 한 구석이나 뒤뜰 한쪽에 소복하게 꽂아 모형 보리밭을 만든다. 이튿날 해가 뜨면 막대기를 들고 남 몰래 남의 집 모형보리밭을 습격하여 보리타작을 하기 위해 서로가 기회를 본다. 가족 집단의 비상한 작전 계획이 펼쳐지기도 한다. 보리타작을 하다가 주인에게 들키면 안 된다. 반드시 감쪽같이 모르게 해야 한다. 보리밭을 잘 지켜 다음 날까지 습격을 당하지 않으면 그 해 보리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긴장된 하루에도 연 날리며, 윷놀이하며 즐거우니, 어찌 보리밭이 남아있는 집이 있겠는가! 대부분 감쪽같이 보리타작을 당하고 만다.

 

아침상으로 입맛을 돋우고 고샅에 나서서 누가 없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내 더위 사세요!’

하면 그 해 더위를 쉽게 이긴다고 한다. 이것을 더위팔기라고 한다.

 

이 날엔 한 끼에 세 집 이상의 타성집(他姓宅) 밥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고 하여, 오곡밥을 서로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어 하루 동안 아홉 번 식사를 하기도 한다. 밥은 김이나 삶은 아주까리 잎에 싸서 먹는데 이것을 복()쌈이라고 한다. 호박고지, 박고지, 무고지, 외고지, 가지나물, 버섯, 콩나물, 고사리 등 채소를 먹는 것을 진채식(陣菜食) 이라고 한다.

 

낮에는 가오리연을 만들어 논밭둑을 건너뛰면서 연을 날리고 밤이면 횃불놀이와 쥐불놀이를 한다. 중간쯤 크기의 빈 깡통에 대못으로 수 십 군데 구멍을 내고 철사줄로 긴 고리를 단 후 숯불을 가득 담고 도계산 멍석 바위에 올라 머리위로 빙글빙글 돌리면, 저 건너 웃톳골 산마루에서도 아이들이 횃불을 돌리며 달이 오르기를 기다린다. 동산에 우람한 달이 오르기 시작하면 횃불을 한 곳에 모아 놓고 달을 향해 두 손 모아 재배하고 조용히 올해의 소원을 빈다. 모두들 대보름달을 보며 비는 소원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쥐불놀이(鼠火戱)는 해마다 정월 첫째 자일(子日:쥐날)인 상자일(上子日)에 농부들이 쥐와 해충을 없애기 위하여 논두렁과 밭두렁에 불을 질러 태웠는데 이것을 쥐불놀이라고 한다. 요즘은 이른 봄 새싹이 돋기 직전에 논밭을 손질하면서 농부들이 일삼아 전답의 두렁을 태우고 있다.

 

대보름 달빛을 보고 한 해의 점을 치기도 하는데 달빛이 흰빛이면 비가 많이 오고, 붉은 빛이면 가뭄이 들고, 달빛이 맑고 진하면 풍년이 들고,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안동 지방에 전래 되고 있는 놋다리밟기, 지신밟기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큰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톳골은 사람이 적어서인지 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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