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모시는 환관(내시) 열 사람이란 뜻이다. 어느 시대 황제이든 환관은 있었다. 특히 중국 후한 말, 제12대 황제 영제(靈帝) 때 국정을 농락한 10여 명의 중상시였던 환관들을 십상시라고 말한다. 즉, 장양(張讓)·조충(趙忠)·하운(夏惲)·곽승(郭勝)·손장(孫璋)·필남(畢嵐)·율숭(栗嵩)·단규(段珪)·고망(高望)·장공(張恭)·한리(韓悝) 등 10인을 가리킨다.
건녕 원년(168) 영제는 어린 나이로 황제가 되어 전혀 통치 능력이 없었으므로, 십상시는 영제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하여 주색에 빠지게끔 만들고, 하진(何進)의 누이를 바치기도 했다. 왕은 장성한 뒤에도 십상시의 농간에 놀아나 정치를 돌보지 않자,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장각(張角)이 이끄는 황건적(黃巾賊)의 세력이 가장 컸고 황건적의 난이 평정되자 십상시는 모두 열후(列侯)에 봉해졌다. 그들의 세력은 커져서 십상시가 멋대로 천자의 칙명을 내렸다.
하진이 누이의 세력을 빌려 십상시와 권력을 다투다가 제후(諸侯)들을 불러 모아 십상시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이에 십상시가 난(후한 189년 9월 22일)을 일으켰다.
장수 원소와 조조(曺操) 등이 대궐로 들어가 십상시를 비롯한 환관 등 무려 2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였다. 이때 권력을 휘두르던 대장군 하진도 죽었다.
나라 중추(中樞)가 무너져 큰 혼란에 빠지게 되자, 서량(西涼)의 호족(豪族) 동탁(董卓)이 이 사건을 이용해 황제 변(辯)을 발견하고 모시고 입성하여 궁정의 세력을 장악하고 또 횡포를 부리자, 지방 호족들이 분격하여 이에 군웅할거(割據)의 대 전란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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