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명덕 거사님,
요즘 마음이 뒤숭숭하여 전화를 했다는 명덕 거사님의 말씀을 듣고, 문득 얼마 전에 나도 까닭 없이 마음이 두근거리고 잠이 오지 않으면서 쓸데없는 일이 상상되어 자꾸 떠오르고 그 생각에 더욱 걱정을 키우면서 괴로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왜 이런 걱정을 내가 지금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연속되는 상상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려고 절에 가서 명상을 하기도 하고, 땀나게 운동도 하였습니다.
“나고 죽는 것이 모두 환(幻)인데 업장(業障)이 어디 있으며, 내 몸이 없는데 걱정은 또 어디 있겠는가?”
관음사 해우소(解憂所)에 적힌 이 법문을 보았습니다. 거듭 읽고 또 읽으면서 꿈속의 일을 가지고 내가 왜 이렇게 들떠 마음을 잡지 못하는가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잡념에 빠질 때마다 이 법문을 부적삼아 떠올리니 마음이 가라앉곤 하였습니다. 역시 부처님의 말씀은 위대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나의 존재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순조롭게 풀리지 않을 때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과소평가하여 자학하는 경우 자기 열등의식에 빠져 심약한 상태를 벗어나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존재의 유일함과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업적을 이룬 위대함을 찾아 스스로의 자만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좀 세속적이고 허풍스런 방법이긴 하지만
“세상에서 어디 나보다 잘난 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하는 식입니다. 자긍심은 삶과 도전의 의욕을 갖게 하여 주었습니다.
趙泳濟 號謙山 法名明德 友人以爲 明德所蘊者凡十 而人得其一 可足生平 一風貌 二官爵 三道樂 四强記 五談論 六筆寫 七健康 八後嗣 九多財 十風流 此乃上淸淪謫之人乎
(조영제는 호는 겸산, 법명은 명덕이다. 그의 친구들은 명덕이 (다재다능하여) 남보다 훌륭하게 쌓아 이룬 것이 열 가지나 되나 사람들은 그 하나라도 얻으면 평생 만족할 수 있다고 여겼으니 그 첫째는 출중한 외모요, 둘째는 높은 관직이요, 셋째는 도락을 즐기는 것이요, 넷째는 뛰어난 기억력이요, 다섯째는 구수한 입담이요, 여섯째는 글씨요, 일곱째는 건강이요, 여덟째는 훌륭한 아들들이요, 아홉째는 풍족한 재물이요, 열 번째는 풍류를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곧 하늘에서 보내 온 사람이로다.)
봄날의 춘정이 남정네들 마음을 잠시 괴롭힐 뿐입니다. 꽃피는 봄날은 갑니다. 춘몽도 한 자락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한 괴로움쯤은 누구나 견뎌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2013 계사년 3월 27일
주비 합장
<답신>
감사합니다.
편작이 열 명이라도 주비님께서 주신 이 글귀보다 더 명약이 있겠습니까? 소인도 최근에 자긍심, 희망, 용기를 갖고자 엄청 마음속으로 노력하고 있는 중, 주비님께서 이런 글을 주시어 좋은 청량제가 아닌가 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때로는 허풍도, 모든 일에 00척, 00도 하는 생각도 하여 봅니다.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 머리로 한 공부라, 즉 지식 공부만 하여서 가슴에 닿지 않으니 지금까지 머리로 한 공부의 한계점에 도달하였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도반 없이 공부하시는 분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본인은 그래도 전생에 조그마한 공덕이 있어서 지금 훌륭하신 주비님과 인연이 되어 보통사람은 할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감로 법문을 득하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좋은 법문 부탁드립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나무반야바라밀 나무반야바라밀 나무반야바라밀
계사 맹춘 명덕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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