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비글마당/흙살깊은골짜기<편지>

도반님께

주비세상 2014. 2. 17. 11:01

           도반님께

 

지금 저는

철산 2인 다기에 중국 명차를 우려내면서

화려한 궁궐의 4박 5일을 다시

거닐고 있습니다.

 

수마의 공격을

무식하게 이겨 본 이틀 밤이

대견하였다고 싱긋이

미소를 지어봅니다.

 

꿈 꿀 시간도 없는

불 없는 황토방의 짧은 취침은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수면의 진미였습니다.

 

시간마다 대웅전 앞마당을 지나시며 

괴롭도록 공부를 독려하신

철산 스님의 보살핌은

잊을 수 없는 도인의 너그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깜짝 놀란 일은

생활을 잊고 정진하는 보현암의 보살들과 공양주, 사무장 보살이

대승선원을 휩쓸며 가행정진 하는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

부끄러움에 머리를 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비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꿋꿋한 도반 박 거사님과 명덕 거사님이

항상 그림자 되어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산양에서 도토리 태평초의 깔끔한 맛

산골 다방에서 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승속을 오가며 나눈 긴 대화가

함께 가는 길을 더욱 단단하게 다졌습니다.

 

벌써 차가 다 우려졌나 봅니다.

‘山’ 자가 새겨진 찻잔에

철산 스님의 모습이 차향과 함께

은은히 피어오릅니다. 

 

                     2008년 7월 2일 대승사 하안거를 마치고

                           대구에서 주비 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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