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단상(中原 斷想)
유장히 흐르는 황하(黃河)를 끼고 광활한 중원을 달렸다.
숭산 소림사에서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도 모른 체 춤추는 무술 쇼에 넋을 잃었고, 공덕 쌓은 큰 스님 탑림(塔林)의 부도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다.
쌀쌀한 봄날 저녁, 선종소림 음악대전을 관람하려고 푸른 외투 덮어쓰고 밤바람 쏘이며 산과 계곡 전체를 실경 무대로 꾸며 놓은 스케일에 경악하고, 600명의 아티스트들이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며내는 연출에 감탄하여 모두가 기립 박수를 보냈다.
황하 문명 발상지의 선사 시대 유물들이 하남성 박물관에 고스란히 모여 역사를 증언하는 것을 뒤로하고, 운대산의 붉은 협곡 홍석협을 걸으면서 선계(仙界)에 온 듯, 땅 속을 거니는 듯, 모두 죽림칠현 신선이 되어 황홀하고 신비로운 비경(秘境)에 넋을 잃었다. 십 년에 걸쳐 이룩한 운대산 똬리굴을 열여덟 번이나 뚫고 오를 땐 차창 밖이 저승인 듯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천혜의 절경을 훔쳐보며 굽이굽이 돌아올라 수유봉 전망대에 섰다. 황하를 굽어보고 산 아래 펼쳐진 까마득한 평원을 바라보며 대륙을 가슴에 품어본다.
영웅호걸의 고장인 낙양이다. 이하 강변의 단애(斷崖)를 벌집처럼 파서, 크고 작은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속에 부처님을 모신 용문석굴이, 여린 잎 돋는 수양버들을 앞세워 우리를 따스하게 맞이한다. 저 많은 부처님들이 수 천 년 동안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에 합장하여 예를 올린다. 오늘도 부처님들은 강 건너 자리 잡은 아늑한 향산사의 중생들이 발원하는 기도 소리를 듣고 묵묵히 가피를 내리시고 계신다.
화사한 목련꽃 그늘에 잠든 당나라의 시인 백낙천은 비석과 숲에 싸여 말이 없고, 나뭇가지에 모여든 새들의 애절한 장한가(長恨歌) 가락만 구성지게 들려온다.
고속열차가 서안으로 쾌속 질주하는 차창엔 짙푸른 밀밭이 눈이 시리도록 펼쳐지고, 드문드문 퇴색한 작은 마을이 한가로이 지나간다. 터널이 없어 산도 없는가했더니 남쪽 차창으로 우람한 무초산지(無草山地) 바위산들 이 알몸뚱이로 달려든다. 놀랍도록 웅장하게 생긴 저 벌거숭이 돌산은 지기(地氣)가 강하여 각국의 수도자(修道者)가 많이 찾는다는 화산이다.
서안 시내에 자리 잡은 자은사 대안탑은 현장 법사의 구법공덕(求法功德)으로 인도에서 가져 온 사리와 불경을 봉안한 거대한 7층 탑(塔)인데 탑 안으로 올라가서 예경할 수 있게 크게 지었다. 우리는 아쉽지만 북광장의 춤추는 분수 쇼에 가린 담 너머의 대안탑을 우러러보며 현장 법사의 헌신적인 구법 활동에 경의를 표했다.
작은 산처럼 보이는 진시황릉을 지나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앞에 이르니, 꼬리를 매듭지은 네 마리의 출정(出征) 마상(馬像)이 돌진하듯 우리를 맞이한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을 갈구하며 불로초를 찾고, 사후(死後)에도 지하궁전에서 권력을 향유하려는 폭군의 꿈이 놀랍게도 눈앞에 나타나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제물로 삼았던 무지한 인간의 탐욕이 무서운 비수가 되어 온 몸에 꽂히는 듯 전율을 느낀다. 잘못 살다간 폭군의 부끄러운 흔적이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으로 오인될까 두려워 마음이 아려진다.
화청승지(華淸勝地)에 핀 당 현종과 절세가인 양귀비의 애틋한 사랑은 백낙천의 장한가(長恨歌)로 물 맑은 화청지 무대 위에 무극(舞劇)으로 아름답게 태어나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하나, 그 아름다운 로맨스의 찬양보다는 인간의 욕망이 빚은 권력과 영화의 허무함으로 화청궁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애잔하게 흔들어 놓는다.
서안의 중심부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서안성은 숱한 병사들의 고혼(孤魂)을 품고 영욕의 세월을 꿋꿋하게 지켜보며 저 어두운 밤에도 찬란한 조명을 받으며 사람들을 불러 모아 투쟁의 아픈 역사를 절규하듯 깃발을 흔들고 있다.
아 ! 거대한 땅, 거대한 평원, 거대한 강, 거대한 산, 거대한 협곡, 거대한 성, 거대한 석굴, 거대한 왕릉, 거대한 사랑, 거대한 문화 공연, 거대한 현대 건축물, 거대한 인구를 가진 중국이여! 공자(孔子)의 큰 사랑, 인(仁)을 저마다의 가슴에 품고 거대한 마음을 온 세상에 펼쳐 보이기를 소원해본다.(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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