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를 풀이하면 '송(宋)나라 양공(襄公)의 인(仁)'이란 뜻이다.
쓸데없는 인정을 베풀거나 불필요한 동정이나 배려를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비유할 때 쓰이는 말이다.
이 말은 <십팔사략 (十八史略)>에 나온다.
덮어놓고 착하기만 할 뿐,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대의명분을 가리켜 "송양지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어리석은 사람의 잠꼬대 같은 명분론을 비웃어하는 말이다.
춘추시대는 오패(五覇)의 시대이기도 하다. 오패의 첫 패자가 제환공(齊桓公)이다. 송양공(宋襄公)은 제환공의 비밀 부탁을 받아 제환공이 죽은 뒤 그의 아들 공자소(公子昭)를 제나라 임금으로 세우는데 공을 세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송양공은 환공의 뒤를 이어 자기가 패자가 될 꿈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제환공도 그랬듯이 중원을 넘보는 초나라를 꺾지 않고는 천하를 호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송양공은 마침내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초나라와의 결전을 감행한다.
양왕이 인솔하는 송군은 초군과 홍수(泓水) 근처에서 마주쳤다. 송나라가 먼저 강 건너편에 진을 치고 있었고, 초나라가 뒤에 강을 건너 송나라와의 결전을 하게 되었다. 이때 송의 장군 중에 한 사람이
"적이 강을 반쯤 건널 때를 틈타 공격을 가하면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고 권했다.
그러나 양공은
"그건 정정 당당한 싸움이 될 수 없다.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참다운 패자가 될 수 있겠는가?"
하며 듣지 않았다.
강을 다 건너온 초나라 군사가 진을 벌이고 있을 때,
"적이 진을 미처 다 벌이기 전에 이를 치면 적을 혼란에 빠뜨릴 수가 있습니다."
하고 권했으나, 이때도 양공은
"군자는 사람이 어려운 때 괴롭히지 않는다"
하고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전투에서 패하고 양공도 다리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로 인해 2년 후 양공은 덧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쨌든 그 결과 초나라에 크게 패하고 마는데, 이 일을 가리켜 세상사람들은 "송양의 인"이라면서 비웃었다. ( 世笑以爲宋襄之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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