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천의 마을 유래>
★위치:경북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 옹천리
옹천리는 조선시대 때부터 교통의 중심지로서 안기도 찰방이 관할하는 옹천역이 이곳에 있었다. 현재에도 북후면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면소재지이다. 안동에서 5번 국도를 따라 옹천리까지는 약 16km이다. 이 마을은 북서쪽으로 병풍같이 두른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마치 단지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옹전(瓮田)이라 불렀다. 그 후 마을을 가로지르는 옥계천이 맑고 깨끗하여 옥천(玉川)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는 마을에 물맛이 좋기로 이름난 샘이 있어 옹기옹(瓮) 자에 샘 천(泉) 자를 써서 옹천이라 이름하였다.
1914년 북선면의 거인동 일부를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에는 행정구역으로 옹천리를 1·2·3리로 분리하여 약 500여 호가 거주하는 대촌이다. 주민을 이루는 성씨는 진주 강 씨(姜氏)가 가장 많은 동성마을을 이루고 있다. 자연마을의 수는 전체 14개이다. 1리의 자연마을은 본마, 감상골, 굴로골, 밤실, 새마, 토골의 6개이며, 2리에 본마, 원구렁 2개이고, 3리에는 본마와 시장, 한지골, 오누골, 개평, 관사 등 6개이다.
▶ 옥천(玉泉)·용전(龍田)·
옹전(瓮田)·옹천(瓷泉)·본마
이곳은 마을의 북서쪽으로 병풍같이 두른 높은 산 아래에 아득히 자리 잡아 마을 형상이 마치 단지와 같이 생긴 곳이라 하여 옹전(瓮田)이라 일컬어왔다. 또한 마을 앞에 용바위(龍岩)가 있어 용전(龍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 북서편의 두문령(斗文嶺)에서 발원하는 옥계천(玉溪川)이 마을을 지나가기에 옥천(玉川)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이 옥계천 기슭에 솟아오른 샘은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여 이 샘을 영천(靈泉)이라 하였으며 한양으로 가는 길섶이라 오가는 사람은 누구나 이 샘물을 먹었다 한다. 그리하여 지형이 단지 같다는 데서 옹(瓮) 자를 따고 위의 샘을 연유하여 천(泉) 자를 따서 옹천(瓮泉)이라 하였다.
▶ 감성골·감성곡(甘城谷)
예전에는 안동(安東)에서 내성(乃城, 봉화)으로 소장수들이 빈번하게 왕래하였는데 이 마을에는 단맛이 나는 물이 있어 길을 가다가도 꼭 이곳을 들러 물을 마셨다고 전한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지명도 달 감(甘) 자와 내성(乃城)의 성자(城) 자를 따서 감성골(甘城谷)이라 했다. 면사무소에서 북동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봉화 금씨(琴氏)의 동성마을이다.
▶ 굴로골·구로곡(九老谷)
옛날에 아홉 명의 노인(老人)이 살아 장수한 골이기에 구로곡(九老谷)이라 한다.
▶ 토골·토곡(土谷)
옹천역의 동쪽에 있는 마을로 토질이 비옥하다고 해서 토골이라 한다.
▶ 원구령·원곡(院谷)·영곡(靈谷)
옛날 송리원(松里院)이 있던 골짜기이므로 원구령이라 하며 이곳에는 신령한 샘이 있어 영곡(靈谷)이라고도 하는데 영천(靈泉)은 옛날 한양(漢陽)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며, 물맛이 좋기로 소문났었다. 지금도 주민들의 식수(食水)로 이용되고 있다.
▶ 한지골
옛날 한절(寒寺)이 있는 골이기에 한절골이라 하였고, 차츰 변하여 한지골로 부르게 되었다.
▶ 오누골·오늑골·오로곡
본동의 서편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한 곳으로 옛날 다섯 분의 노인이 살았다. 하여 오로곡(五老谷)으로 불렀다.
▶ 간지골·관지곡(觀芝谷)
옹천리의 중심에서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마을로 옥천연방고(玉泉聯芳稿)란 문집에 의하면 관지곡(觀芝谷)이라 적혀 있고, 마을 밖으로는 숲이 우거져 있으나 이 골에 들어서 보면 지초가 많이 보여 관지곡(觀芝谷)이라 불렸다.(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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