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비글마당/흙살깊은골짜기<편지>

선우님께

주비세상 2014. 2. 17. 11:06

선우님께

 

 잘 귀가하셨는지요?

 오랜만에 어렵게 시간을 낸 도반님의 만남이라 그 어느 때보다도 가슴 벅참을 느꼈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두려운 마음으로 찾은 대승사는 일주문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어울리지 않아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하던 콘크리트 백련당(白蓮堂)이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옛 모습으로 복원되어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며 우리를 맞이했고, 템플스테이를 위한 당우(堂宇)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서, 불자들을 위한 탄공선사(呑空禪師)의 지극한 정성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백련당에서 재가불자들을 위해 스님들과 똑같은 3개월 안거를 추진하고 있으니 참선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는 대승사임에 틀림없습니다.

 선우(禪友)님,

 2박 3일은 짧은 수련이지만 저는 천재보(千載寶)를 얻은 듯 귀가한 뒤에도 가슴 가득 기쁨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새로 지은 백련당의 깔끔한 선방도 잊을 수 없지만, 재가불자로서는 보기 드문 16안거와 5안거를 성만하신 도반을 만나, 그리도 귀한 보이차를 마시면서 선담(禪談)을 나누고, 죽비소리에 맞춰 수행을 같이하였으니 저에게는 큰 감동과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수행은 엄격한 시간에 따라야 했으니 조금의 재량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명덕 거사님과 박 거사님은 정말 알차고 성과 있는 수행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매 시간마다 번뇌의 수령에 빠져 놀다가 마치는 죽비소리에 화두를 찾아 헤매곤 하였습니다. 허공에 날아간 그 시간들이 아깝기도 하고, 가부좌하고 긴 시간 앉아 있었던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백련당에 창 밖 멀리 바람 소리

화두는 어딜 가고 번뇌 숲 속 즐거워라.

입선 죽비 괴롭다가 방선 죽비 반가우니

행주좌와 어묵동정 화두 일념 그 언젠가

하루 세끼 잊지 않고 취침시간 엄수하니

몽중일여 오매일여 한 번인들 맛 볼 손가?

 

 이것은 솔직한 제 마음의 표현입니다.

 탄공 선사의 생신상(生辰床)을 거하게 받고, 그간의 반가운 얼굴들을 뒤로 할 때, 부처님의 모습과 주지 스님의 모습이 더욱 정겨운 것은 저만의 느낌이었을까요?

 이번 안거를 위해 수차례 섭외에 애를 쓰셨고 날씨 때문에 노심초사하셨으며, 탁월한 재담(才談)으로 항상 분위기를 원만하게 이끌어 주신 운수선원의 방장 명덕 거사님께 머리 숙여 감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자당님의 간호와 가사(家事)의 다사(多事)를 무릅쓰고 어려운 시간을 내어 동참하신 것도 고마운데, 설한풍(雪寒風)에 숙소의 어설픈 일을 앞장서서 정리하시며 참선 일념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신 박 거사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선우님,

 사불산의 신선한 기운을 온몸 가득 받고,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흠뻑 받았으니 2011년에는 날마다 하시는 일에 기운이 솟고, 가족과 가정에 웃음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올해에도 힘 모아 성불합시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2011년 1월 12일

주비 합장

<대승사 참선 수행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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