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당숙님께
당숙님을 뵙고 온 지도 보름이 가깝습니다. 지난번 찾아뵈었을 때는 여기서 듣고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아 보여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동안 건강은 많이 좋아졌겠지요? 당숙모님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있으니 머지않아 큰 힘을 얻어 함께 남산을 활보하는 날이 꼭 돌아올 것입니다. 더구나 재종 아우님들도 당숙님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명하신 의료진과 상담을 나누고 치료 대책을 숙의하였다는 말을 듣고 훌륭한 부모 밑에 효자가 난다는 말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자랄 때 늘 곁에서 훌륭하신 당숙님을 보아왔습니다. 선친께서 침이 마르시도록 당숙님을 칭찬하시는 말씀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중학교에 다니실 때 학력이 우수하고 총명하여 월반(越班)까지 하셨고, 도계촌까지 새벽길을 다니시며 한학(漢學)을 배울 땐 글 읽는 소리가 톳골에 가득하였고, 공무원 시험을 보신다고 밤늦도록 방에 불을 밝히고 공부하시어 끝내 이루어 내신 장한 모습은 뒤따르는 저희들의 우상이었습니다. 아마 그때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는지 모릅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니 자주 삶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잠시 머무는 동안 한없는 일을 만들고 그 일속에 얽매어 허덕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마 저도 그 중 한 사람이겠지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건지, 무슨 생각을 하며 생활해야 하는 것인지 스스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습니다.
공자는 30에 입(立)하고 40에 불혹(不惑)이라 하였지만 진정한 의미도 모르는 범인(凡人)들이야 어찌 흉내인들 내겠습니까? 모두가 자기의 욕심을 위한 방편으로 말할 뿐이지요. 부처님도 모든 모양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라고 하시고 이것을 깨달으면 진리를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런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나이 탓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저는 이제라도 선비의 고고한 기품을 동경하며 무위(無爲)의 삶을 흉내 내고 싶습니다.
당숙님!
저는 요즈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고향 산천의 아름다운 모습이 더욱 더 생각납니다. 톳골 고향집을 포근히 감싸던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들, 힘들었던 농사일들, 우릴 위해 고생하시던 부모님, 이 모두가 이젠 정겹게 그리움으로 다가온답니다.
퇴직을 한 후 그 정겨움에 못 이겨 서툰 솜씨지만 그 모습을 가사로 지어보았습니다. 제목을 <토곡십이곡>이라 붙였지요. 당숙님이 계시는 아파트에 가 보고 잠시라도 고향의 풍경을 떠올리며 옛 생각을 하면 힘이 솟을듯하여 톡필(禿筆)을 보내드릴 생각을 했습니다. 읽어보시고 바르게 지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당숙님!
부디 건강을 회복하시어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을 열심히 하여 제가 어릴 때 우러러보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보다 높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당숙님의 쾌유(快癒)를 빌면서 이만 올립니다.
2002년 12월 13일
대구에서 당질 성무 올림
당숙님께
오래 동안 인사드리지 못하여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환우가 조금씩 차도를 보인다는 말씀은 인편으로 종종 듣고 있습니다. 당숙모님과 재종제들도 모두 안녕하시리라 믿습니다. 올해는 쾌차하시어 어릴 적 뛰놀던 톳골에도 왕래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퇴직한 후 학교에도 몇 달씩 나가다가 이제는 집에서 책을 보거나 산이나 절을 찾기도 하면서 소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에 있는 저희는 당숙님의 염려의 덕분으로 언제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가한 시간이 있어서 어릴 적 정든 톳골의 아름다운 자연과 환경을 낙서하다가 문득 톳골의 역사가 백년이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톳골에서 생활하신 선조들의 자취를 더듬어 글로 몇 장 적어 보았습니다. 워낙 수사력이 부족한 제가 글을 쓰다 보니 어구마다 매끄럽지 못한 표현이 수두룩합니다만 톳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모습을 잠시 떠올릴 수 있을듯하여 용기를 내어 보내드립니다. 읽으시고 서툰 점 메모하여 바르게 지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제 곧 움츠렸던 긴 겨울이 따뜻한 봄 햇살에 걷힐 것입니다. 당숙님도 지금까지의 지루했던 환우를 걷으시고 봄날의 싱싱한 새싹이 되어 활기찬 봄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에 또 인사 올리겠습니다.
2006년 2월 20일
대구에서 당질 성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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