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숙(漢文學塾)/선비메일함

30. 성(姓)과 씨(氏)에 대하여

주비세상 2013. 12. 18. 13:10

 

<인터넷에서 퍼 온 글입니다.참고하세요>(주비세상)

 

1. 중국의 성씨관

 

 중국은 예로부터 성(姓)과 씨(氏)는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원래 성(姓)이라 함은 모계제 사회의 흔적으로 “어머니의 출신지”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씨(氏)는 “출생한 뒤에 아버지와 함께 살던 곳”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중국인들이 모두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고 있는 “황제(黃帝)”의 경우 성(姓)은 “희(姬)”이고 씨(氏)는 “헌원(軒轅)”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성격이 조금 바뀌어 황제(皇帝), 즉 천자(天子)가 내려 주는 것은 성(姓)이라 했고, 제후(諸侯) 또는 국왕(國王) 정도가 내려 주는 것은 씨(氏)라 했다. 언제나 성(姓)이 한 단계 위의 개념이었는데, 보통 성(姓)은 한 글자였고 씨(氏)는 두 글자가 많았다.

 

 그리고 한(漢) 나라 때에 족보라는 것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천자가 각 제후나 공신들의 자제들에 대한 특별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천자가 만든 족보에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가 권력의 유무를 판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성씨는 남자들만의 혈통을 표시하는 것이 되어 버렸고 생물학적으로 특정한 Y염색체의 유전 상황을 표시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어쨌든 중국의 성씨는 역사가 5000년이 되었고, 성씨는 문화의 전승과 남성 혈통의 흐름을 연구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같은 성씨이면 무조건적으로 친근감을 느끼는” 관습이 자연스러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혈연 관계는 인간생활에 활력을 넣어 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2. 한국의 성씨관

 

 원래 우리 나라의 토착민들은 성씨가 없었다고 한다. 계속적인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일부 고위 관리들에게서 성씨를 가진 자들이 간간이 나타났고, 삼국시대 말기 신라에서는 국력의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왕족을 중심으로 성씨를 스스로 만들어서 가졌다. 그래서 왕족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죽고 없는 먼 조상님들(혁거세, 알지 등등)에게도 소급해서 성씨를 만들어 붙이고 했다.

 

조선시대 말까지도 우리나라는 양반보다 쌍놈들이 더 많았고, 성씨를 갖고 있는 사람들 숫자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대한제국 시절 일본의 압력 덕분에 호적에 성씨란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올린 사람들도 많았지만, “만들어 올렸다”는 그 사실은 언제까지나 “가문의 비밀”로 숨겨 두어야 했다.

 

 성씨의 유무와 관련한 성씨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우리 백성들은 양반제도가 비록 법적으로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어렵게 얻은 “양반의 성씨”만큼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1940년대에 일본이 “이제 조선과 일본은 명실상부한 한 나라”임을 강조하면서 일본식으로 창씨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발표하고, 앞으로 성씨로 인한 조선인, 일본인 간의 차별대우는 영원히 없어질 것이라 하였다.

 

 성씨 자체를 “가문의 역사”로 생각하는 많은 우리 백성들은 당연히 반대하였고, 성씨의 역사가 불과 50년밖에 안 되어 성씨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도 없었던 일본 정부에서는 조선인들의 반대를 보고 “거참, 이상하다. 그깟 성씨 가지고 왜들 저러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성씨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일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성씨를 만들어 신고한 사람도 있었다. 소설가 춘원 이광수는 신청 첫날 아침에 맨 먼저 신고하였는데, 이광수가 만든 성씨는 “일본 천황 고향의 뒷산인 향구산(香久山)의 이름에서 따 왔다는” 향산(香山)이었다. 이광수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성씨란 건 별 것 아니야”라는 자기네들의 전통적 인식을 한국식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어쨌든, 지금의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자가 결혼 후에도 자신의 성씨를 그대로 유지하는” 나라가 되어 있다. 전 세계의 남자들이 한국인들에게 깜짝 놀라는 것이 두 가지라 하는데, 한 가지는 부인의 성씨 문제이고 또 한 가지는 “부인이 남편 통장을 관리”하는 것이라 한다. “자다가 벌떡 깨어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들이 보는 한국은 거의 구제불능성 선천적 여성천국이라 한다.

 

 3.정리

 姓은 모계 혈족인 여자가 낳은 자녀들이 “어머니의 출신지”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氏는 하나의 성에서 갈라진 계통의 구별을 나타내는 칭호로 父의 혈통을 표시하는 거주지,숭배물을 성으로 삼았다.

하,은,주 시대부터 춘추전국 시대까지 성과 씨의 구별이 뚜렷했다. 즉 한 사람이 성과 씨를 다르게 가졌다. 그러나 춘추전국 시대 이후 평민도 성을 지녔고  진, 한 이후에는 성과 씨의 구별 없이 하나의 의미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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