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동물
늘어진 수양버들 마디에 싹눈이 부풀어 오르고 남쪽 나라(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로 추위를 피해 갔던 제비들이 다시 찾아와 빨랫줄에 앉아 지저귀면 괭이 들고 나서던 걸음 멈추고 혹시 박씨 물고 왔는지 쳐다본다. 양지쪽 보리밭이 파랗게 생기가 돌고 봄볕 사이로 아지랑이 피어오르면 종달새(노고지리) 높이 떠 우지지고 뒷산 참나무 숲에는 꾀꼬리 노랫소리 정겹다.
더위에 지친 밤, 마당에 멍석을 깔고 잠을 청하면 영롱한 별들이 마당으로 쏟아지고 저 멀리 소쩍새 소리 처량한데 낮에 논에서 울던 뜸부기는 벌써 잠이 들었다.
곡식 거둔 논밭을 휑하니 찬바람이 쓸고 가면 굶주린 참새떼 짚가리에 옹기종기 모여들고, 재수좋은 날 톳골못을 지나다보면 목 푸른 청둥오리와 다정한 원앙새가 물 위를 미끄러지듯 노니는 모습을 보는 것은 횡재가 아닐 수 없다.
밤길을 걷다보면 제 세상 만난 듯 활개 치는 올빼미와 박쥐(명지바위 굴에 서식)에 놀라고 부엉이 우는 소리에 몸이 오싹해진다.
함박눈이 내려 나뭇가지가 휘어지고 길이 막히는 겨울이오면 오래도록 눈 속에서 굶주린 장끼와 까투리가 먹이 찾아 눈밭에 무리지어 내려오는데 세상 만난 강아지가 그냥 두지 않는다.
이처럼 톳골의 새들은 많다. 오래도록 눌러 살고 있는 텃새로는 검고 흰 박새, 덤불에 앉으면 찾기 힘든 어치, 까치, 까마귀, 참새, 꿩, 올빼미, 딱따구리, 비둘기 등이 있고, 겨울이나 여름철 살기 좋을 때만 찾아오는 철새로는 뻐꾸기, 파랑새, 부엉이, 꾀꼬리, 제비, 백로, 독수리, 갈가마귀, 청둥오리, 기러기, 원앙새 등이 있다.
아쉬운 것은 논에 물 가득 잡아 두면 띄엄띄엄 날아와 먹이 찾던 황새와 풀어 둔 병아리를 물고 가던 맹금류인 매와 독수리는 자주 보이지 않는다. 이른 봄 고향을 찾아 몽고나 시베리아로 날아가는 기러기떼와 갈가마귀떼도 해마다 볼 수 있는 장관이지만 지금은 보기 힘들다.
시력이 나빠서 햇빛을 싫어하고 청각과 후각이 발달하여 땅속에서만 먹이를 구하는 두더지는 개구리와 지렁이를 잡아먹기 위해 애써지은 농작물을 망쳐놓는다. 논밭둑에 구멍을 뚫고 사는 동물 중에 농사꾼에게 버릇없는 것이 쥐다. 아무리 연세 높은 어른이 일 년 내내 애써 가꾸어 놓아도 열매, 뿌리, 잎 할 것 없이 제일 먼저 서생원이 맛을 보니 정말 버릇없는 놈이다.
파충류 중에서는 비단뱀이 많고 다음으로 도마뱀, 독사, 구렁이가 서식하고 있으나, 희귀종인 흑사나 백사를 직접 본 사람은 드물다. 양서류 중에서 개구리는 여러 종류가 있다. 비 올까봐 먼저 걱정하며 나뭇잎이나 풀잎에 붙어 울어대는 청개구리, 웅덩이 가에 자주 보이는 알록달록한 비단개구리, 부티 나는 떡개구리, 밤이면 시원하고 축축한 곳에 모여 노는 도롱뇽, 비 온 뒤에 마당에 자주 찾아오는 두꺼비, 무논에서 개구리 노랫소리에 장단 맞추는 맹꽁이, 한 번 붙기만 하면 떨어질 줄 모르는 미끈거리는 거머리 등이 있다. 궂은비 내리는 여름 장마 때는 논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이다.
톳골 저수지 여수로 아래 도랑을 따라 내려가면 바위틈에 고인 맑은 물에 작은 버들붕어가 떼 지어 놀면 비늘 번쩍이는 참붕어가 한바탕 훼방을 놓고, 돌멩이를 들면 잠자던 가재가 흙탕물 속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 진흙이 좋아 날마다 머드팩을 하는 미꾸라지는 입가에 수염이 난 줄도 모르고 벼 포기 사이의 가득한 부평초를 휘저으며 말없는 달팽이를 밀고 달아난다. 톳골못은 잉어, 붕어, 피라미, 새우, 달팽이들의 세상이다.
상처 난 참나무 기둥에 수액이 흘러내리면 진딧물과 개미와 풍뎅이들이 분주하게 오르내리고, 시커먼 장수하늘소는 점잖게 발길을 옮기며 무서운 집게를 앞세운다.
봄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온갖 벌, 나비들이 꽃에서 꿀을 먹는다. 이곳에 서식하는 벌은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 땅벌(속칭 : 땡비), 값비싼 꿀을 모아주는 꿀벌, 위험한 말벌, 그리고 이름 모를 작은 벌들이 톳골의 나무와 숲에 많이 서식하고 있다. 나비의 종류도 다양하다. 배추밭에 하얀 날개 나풀거리며 찾아드는 연약한 배추흰나비, 봄날 풀숲에 짝을 지어 꽃놀이 다니는 작은 노랑나비와 흰나비, 날개에 흰 점 줄이 셋 있는 세줄 나비, 얼룩덜룩 호랑나비, 시커멓고 무섭게 큰 제비나비 등이 있고, 나방은 송충이 나방을 비롯한 벌레들의 생육과정에 나타나는 수많은 나방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풀숲과 나무, 물가에서 환생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가만히 숲을 들여다보면 이사하기 싫어하는 거미들이 하얀 거미집을 곳곳에 지어놓고 그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있다. 먹이가 걸리는 지 지켜보다가 지처서 거미는 근시안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톳골의 나무와 숲에 서식하는 거미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뜨거운 여름 날, 더위에 지쳐 나무 그늘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으면 발밑에 사마귀가 엉금엉금 기어오르고, 매미, 쓰르라미 소리가 귓가에 내려앉는다. 모깃불 연기 쾌쾌한 밤이면 반딧불이가 별똥 되어 이리저리 떨어지고 여치, 풀무치 소리 조용히 귓전에 머문다. 가을철 논둑을 지나가면 메뚜기떼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방아깨비도 덤성덤성 벼이삭을 건너뛰는데 귀뚜라미는 땅속 구멍에서 가을을 기다린다.
톳골못에는 왕잠자리와 실잠자리가 창포 잎에 쉬었다가 수면 위를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파란 가을 하늘에는 고추잠자리가 하늘 가득 날아다니는데 검은 잠자리는 지쳐서 바지랑대에서 졸고 있다. 물 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금쟁이 쪼르르 기어가고 물매암이 빙글빙글 맴을 돈다. 물속에는 장구애비, 물벼룩, 물방개, 개아재비 등이 시골장터에 나온 듯 이리저리 헤엄쳐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