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골백년/톳골을지킨사람들

2. 24세 강관수 선조

주비세상 2009. 8. 3. 11:28

2. 24세(世) 강관수(姜寬秀) 선조

 

 박사공파 24세인 강관수(姜寬秀 1869-1949) 선조께서는 주손으로 태어나 함안 조씨와 혼인하여 옹천 2동에서 3마지기(600평)의 작은 농토를 경작하며 위로 딸 둘과 아들 대순, 대량, 대재, 대수 4형제를 두고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백서 강인수(독립유공자) 선생이 문중에 논의하여 경작하던 농토와 톳골(안석골) 문중 땅 3마지기를 바꾸어 집터를 닦고 방 두 칸 오두막에 부엌을 달아내는 일을 주선해 주셨고, 문토(門土)를 경작하고 선영을 관리하도록 위탁하셨다. 이때부터 우리의 선조가 톳골의 안석골에서 개척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에 이주해서 여섯째(大粹:1909년생)와 막내가 태어났으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1908년경으로 추정해도 톳골의 역사는 약 98년이 되는 셈이다.

 

맏딸은 출가하여 일찍 사망하였고, 둘째 딸은 안동시 서후면 저전동 속칭 보리 고개로 출가했다. 둘째 아들 대량은 안석골 본가 옆 도계산 기슭에 거처를 마련하였고, 셋째 아들 대재는 옹천 1동으로, 넷째 아들 대수는 영주시 평은면 예고개 아래 연당골에서 생활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막내딸은 봉화로 출가하였다.

선조께서 82세로 돌아가시자 안석골 문중산에 모셨다가 후손들이 예고개의 수담(樹淡)에 명당을 찾아 이장하였고, 93세에 돌아가신 배위도 그 좌측 10m 위치에 나란히 모셨다.

 

선조께서는 키가 훤칠하여 6척이나 되었고 옥골선풍의 용모로 약주를 즐겨 드셨으며, 의젓한 선비의 용모를 갖춰 주위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위엄을 보이셨다고 한다. 약주를 드시고 오시는 날이면 고갯길에서 호령을 내렸고 자녀들이 줄지어 마중을 나왔다고한다. 선조의 가르침에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불호령을 내리는 등 가정의 기강과 예를 엄격히 세우셨다고 전한다.

 

여러 마을을 찾아 벗을 잘 사귀었고 그들과 함께 풍류를 즐기시기를 좋아하셨다. 도계 마을 벗의 부탁으로 집 우측 멍석 바위가 있는 노송 우거진 작은 산의 관리와 벌초를 부탁받고 쾌히 승낙하시어 오래도록 벗과의 신의를 지키기도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