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병'은 류성룡을 배향한 병산서원(屛山書院: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을 가리키고, '호'는 김성일을 배향한 호계서원(虎溪書院:경북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2001-36)을 가리킨다.
1620년(광해군 12) 이후 지금의 안동시를 중심으로 한, 영남 남인 유생들이 전개한 분쟁으로 퇴계 이황 이후 영남 남인의 서열을 두고 안동의 대표적 집안인 의성 김 씨 문중과 풍산 류 씨 문중은 물론 이들을 지지하는 유생들끼리 대립하게 되는 사건이다.
이 논쟁의 시작은 1573년(선조 6) 이황이 죽은 후 그를 기리기 위해 지역 사림들이 '월곡면 도곡동'이란 곳에 '여강서원(廬江書院: 숙종 2년 호계서원(虎溪書院)으로 사액)'을 세운 것부터 시작한다. 물론 이 때는 류성룡과 김성일 두 사람 모두 생존했기에 해당 서원에 이황을 배향하는 건 문제가 없었지만, 두 사람이 죽고 난 이후 해당 서원에 배향할 때, "누구의 위패를 이황의 왼편에 모셔야 하는가?"를 두고, 이후 계속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유림에서는 '위계질서'에 관한 중요 사안이었다. '퇴계의 수제자'가 누구인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조정에서는 당시 영남 유림의 원로였던 상주 출신인 정경세(鄭經世, 1563~1633)에게 자문을 구해 류성룡을 이황의 왼쪽, 김성일을 오른쪽에 배향하기로 결정했다.
조정의 결정은 유교 예법에서 소목법(昭穆法)이라 불리는 예규를 따랐다. 소목법에서는 가장 높은 신위를 가운데 둔다. 사당에서 가장 높은 신위가 있는 방향을 서쪽, 신위를 마주 보는 사람이 있는 방위를 동쪽이라고 가정한다. 소목법에서는 가장 높은 신위의 앞으로 서로 마주 보도록 두 줄로 배열하는데, 이중 북쪽, 그러니까 신위의 입장에서는 왼쪽 줄을 소(昭), 남쪽에서 마주 보는 줄을 목(穆)이라고 부른다. 북쪽에 있는 소가 남쪽에 있는 목보다 상급이다. 그래서 소목의 위계순서는 소 1⇒목 1⇒소 2⇒목 2 순으로 진행된다. 소목법을 따르면서도 위패를 일렬로 배열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도 가장 높은 신위를 가운데에 두고 위패 입장에서 왼쪽 줄을 소(昭), 오른쪽 줄을 목(穆)이라고 보아서 소 1⇒목 1⇒소 2⇒목 2 순으로 진행한다.
조정의 결정대로라면 류성룡이 소 1, 김성일이 목 1이 되는데, 류성룡이 김성일보다 윗자리에 앉는 것이다.
당연히 김성일의 문중과 지지하는 유림들이 반발하여 일이 더욱 커졌다.
류성룡과 김성일은 모두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서로를 동문으로서 존중해 주었으며 나이는 김성일이 위이고, 관직은 류성룡이 위였다.
당시 유림들의 여론상 김성일이 존경받고 있었기에 관직만으로는 뜻을 관철시키기 어렵다며 현재까지 시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대립은 결국 '호계서원'에 있던 이황의 위패가 도산서원, 류성룡의 위패는 병산서원, 김성일의 위패는 임천서원으로 옮기면서 호계서원은 그야말로 빈 껍데기가 되었고, 결국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인해 훼철되어 강당만 남았다.
병호시비는 단순한 문중 간의 대립이 아니라, 이인좌의 난 이후 중앙 진출을 하지 못한 '김성일'과 '류성룡'의 학풍을 이어받은 영남 남인들의 자존심 대립이었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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