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골사랑방/滑稽諧謔風流

송강 정철의 로맨스

주비세상 2013. 1. 23. 16:06

 

송강 연가

 

 

 

   조선 중종과 선조 때의 문신이자 시인인 정철은 호가 송강이다. 1562년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강원도 관찰사,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1589년 우의정에 올랐으나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건의하였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유배되었다. 강원도 관찰사 때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짓고 향리에서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지은 가사 문학(歌辭文學)의 대가이다.

  그는 술을 매우 좋아하였다. 이태백이 그러하듯 문인과 술은 땔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충북 진천에 있는 송강 사당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박물관에는 그의 문학 작품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는 망치로 두들긴 자국이 선명한 술잔이 하나 있다.

 

  송강이 술을 아주 좋아하여 늘 술에 취하여 정사를 보자, 드디어 주벽(酒癖)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되었다. 이에 선조 임금은 송강의 절주를 위해 복숭아 모양의 은배(銀杯)를 내려주고 하루에 석 잔씩만 마시도록 하였다.

 송강은 어명을 어기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술을 더 마시기 위해 술잔을 망치로 두들겨 얇게 넓혀서 술을 더 담기도록 하였다. 애주가 송강의 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다.

 

 

 

  송강 정철을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게 그의 애첩 진옥(眞玉)과의 로맨스이다. 유배지 강계의 우거(寓居)에서 진옥을 만난 송강은 먼저 진옥의 마음을 이렇게 떠본다.

 

   옥이 옥이라커늘 진옥인 줄 여겼더니

   이제와 다시 보니 번옥(燔玉)일 시 분명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 볼까 하노라

 

 "번옥"이란 인조로 만든 가짜 옥을 말한다. 그러니까 그의 애첩 진옥은 가짜로 만든 옥이니 함부로 대하겠다, 그러니 살송곳[남성의 거시기]으로 뚫어 보겠다고 넌지시 마음을 떠본 것이렷다.

 이에 질세라 진옥은 기분 좋게 이렇게 화답하였다.

 

   철(鐵)이 철이라커늘 정철(正鐵)인 줄 여겼더니

   이제와 다시 보니 섭철(涉鐵)일 시 분명하다

   나에겐 골풀무 있으니 녹여 볼까 하노라

 

  '섭철"은 불순물이 많이 낀 쇠를 뜻한다. 정철이 바른 쇠, 곧 정철(正鐵)인 줄 여겼더니 불순물이 많이 낀 형편없는 쇠에 지나지 않으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골풀무[여성의 거시기) 로 녹여 보겠다고 맞받아쳤던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해학인가.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호방하고 강직한 송강의 성격에 진옥 역시 흔쾌히 응수한 이 고시조는 지금도 시인묵객들의 주석에서 곧잘 우스갯소리로 등장하는 메뉴이다. 송강은 33세부터 파란 많은 일생을 살았다. 특히 호방한 듯하나 협애한 그의 성격 탓으로 정치인으로서는 상당한 미움을 받았다.

  그래서 십여 차례 이상 유배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술인으로서의 기질은 십분 발휘였으니 술을 좋아한 탓으로 호방한 기상과 소박하고 솔직한 표현 등으로 문명(文名)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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