禹興輪 祀壇碑
▶禹興輪 祀壇碑▶
通訓大夫縣令禹公祀壇碑
有韓遺民昌山成璣雲述
十六代孫泰基謹篆
十七代孫鍾台謹書
於戱此通訓大夫縣令禹公與其配淑人文化柳氏之祀壇也公諱興輪丹陽氏資憲大夫禮曹判書公
諱洪命貞夫人全義李氏公之考妣而余旣作禮判公壇碑之文
아! 여기는통훈대부현령 우공과 그 배우자 문화 류씨의 祀壇이다. 우공의 이름은 흥륜으로 단양 우씨 자헌대부예조판서공 홍명과 정부인 전의 이씨가 공의 아버지와 어머니인데 나는 이미 예조판공단비의 비문을 지은 바 있다.
而且一山列立則不必疊書其世系而淑人僉知文道女也子奠定略將軍訓練院習讀禮賓寺(시)主簿
그러나 한 곳에 나란히 세워서 그 세대의 이어짐을 거듭 적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숙인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문도의 딸이다.
아들 전은 定略將軍訓練院習讀禮賓寺(시)主簿이고.
孫啓江縣監曾孫鳳縣監鵬縣監麟內禁衛譜公避道傳之禍南下星州而及卒葬于大邱大德山前麓而以淑人祔之云然年代久遠兵火累經未詳其位今壇而薦歲一祭者以此也
孫 啓江은 현감이고, 증손 鳳도 현감, 붕도 현감, 麟은 內禁衛譜이다.
공은 정도전의 화를 피하여 남쪽 성주로 내려와 卒하시어 대구 대덕산 앞 기슭에 장례를 치루었고 부인 숙인을 함께 합장했다.그렇게 전해지나 연대가 오래고 병졸들의 방화를 여러 번 겪어 아직 그 위치를 자세히 알지 못하여 지금의 제단으로 옮겨 제를 지내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嗚乎公之仁以撫民義以修行今不可攷徵然根固而葉茂源湥而流長理所固然.
推公後承蕃衍文行科宦緜緜不絶則可知公父子能繼述先德而以裕後昆者也
아! 공은 어짐으로 백성을 두루 살폈고, 의로움으로 일을 수행하였지만 지금 그런 사실을 고징할 수는 없다. 뿌리가 튼튼해야 잎이 무성하고 水源이 흘러야 물줄기가 길게 뻗는 것은 당연한 理致이다.공을 추존하여 후손이 번창히 이어지고, 학문을 넓혀 과거를 보아 벼슬이 면면히 끊어지지 않는 것은 公의 父子가 先祖의 덕망을 계승실천하여 후손에게 충분히 가르쳤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彛性冥感過孰不式其幹事者後孫
涇東夏旭夏胄泰基鍾台也記之者昌山成璣雲也
隆熙紀元後己丑六月 日
공은 곧은 성품과 그윽한 마음으로 누구를 만나도 온유하였고, 일을 맡은 자에게 엄격한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후손으로 경동,하욱,하주,태기,
종태가 있다.
이 글을 기록한 사람은 창산 성기운이다. 융희 기원 후 기축년 유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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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彛性→불변의 성품
※冥感→
드러나지 않고 그윽한 가운데서 움직이는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이 신령에게 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