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비세상 2022. 1. 3. 14:23

▶禹洪命 祀壇碑▶

資憲大夫禮曹判書禹公祀壇碑
有韓遺民昌山成璣運述
十七代孫泰基謹篆
十八代孫鍾台謹書

盖爲祖先設壇以祭者倣於祭法
廟而祧祧而壇墠之制而孝以惟上百世若翁子極盡其報本之義也
粤我
대개 조상을 위해 먼저 제단을 설치하고 제주가 제법에 따라 제향을 올린다. 사당의 위패를 대대로 잇게 단(제사터)을 만들어 그 아비에게 오래도록 효도하는 것은 아들이 그 보본의 뜻을 극진히 다 하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國初資憲大夫禮曹判書公諱洪命姓禹氏貫系丹陽 高句麗門下侍中平章事諱天珪之玄孫成均祭酒諡文僖號易東先生諱倬之曾孫三重大匡赤城君諱吉生之孫 門下侍中丹陽伯(작위3등)諡忠靖號養浩堂諱玄寶之子貞夫人竹山朴氏其妣監察德龍其外祖也

조선 초기 資憲大夫禮曹判書公을 지낸 禹洪命은 관향이 丹陽이다. 고구려 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禹天珪의 玄孫이며 성균관좨주를 지낸 시호 文僖, 호 易東인 禹倬의 曾孫이며., 三重大匡赤城君인 禹吉生의 孫이다.
門下侍中이며 丹陽伯 爵位를 하사 받은 忠靖公 養浩堂 禹玄寶의 子이다. 정부인 죽산 朴씨가 그의 어머니이고 監察 朴德龍이 그의 외조부이다.

 

噫其家學傳襲之述立朝事行之蹟宜其有範俗垂世者而公
酷被道傳含憾滅主之禍墓亦無傳焉他何可徵此子孫之所千古痛恨者也
아! 그 가문의 학문이 이어 온 기록을 보면, 조정에 들어가 벼슬을 할 때, 일과 행동에서 남긴 공적이 마땅히 그것이 풍속에 모범이 되었고 세인들이 본받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은 정도전의 원망스러운 멸주지화를 혹심하게 입어, 공의 묘 또한 전해 오는 장소를 모른다. 그러니 다른 것을 어찌 밝힐 수 있으랴. 이는 자손들이 천고에 통탄할 일이다.

 

乃就於子孫所居地大邱大德山下上仁里前麓設壇而以配貞夫人全義李氏共位而薦享歲一之祭夫人全義君思安女也或疑非傳疑之地而設之然
이에 자손들이 거주하는 대구 대덕산 아래 상인동 앞 산기슭에 설단하여 정부인 전의 李씨를 함께 모셔 세일향사를 올린다. 부인은 전의군 思安의 딸이다. 혹 의심의 여지가 있는 장소일 수도 있다.

 

朱子曰祖宗之氣只在子孫身上祭祀時克其誠敬只是這氣便自然又伸顧不在乎 地之疑信之在乎惟願在雲仍必致其洋洋如在之誠乎
주자가 말하기를 조상의 기운은 오직 그의 자손들이 몸소 제사를 올리는 동안, 그들의 정성과 존경을 지극히 할 뿐이라고 했다. 이것이 조상의 기운을 곧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니, 또한 伸顧할 일이 아니다. 땅에 대한 의심은 믿음에 있다. 먼 후손들이 그들의 광대한 번창을 반드시 이루기를 원함은 그들의 정성에 달려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公兄弟五長洪壽大提學次洪富禮安君次洪康安靖公次洪得執義公其季也
嘗母夫人老境脚痛痿痺十餘年坐臥須人及 公登第而設聞喜宴 五子皆自官廨以至 夫人喜不自勝 倚窓而起不覺脚伸
일찍이 어머니께서 노경에 각통으로 쑤시고 저려서 십여 년을 앉거나 누워서 사람 오기를 기다렸다.
공이 급제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잔치를 베풀었다. 다섯 아들 모두 관아로부터 오니, 어머니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창에 의지하여 일어서 아픈 다리가 펴진 줄도 몰랐다.

 

人謂孝感所致後於式科 以孝伸脚命題亦可知其見重於當世也 사람들은 이르기를 "효성의 감동이 과거를 치룬 뒤에 일어났다. 효성 때문에 다리를 폈다"고 말한 것은 보면 역시 효에 대한 시각이 그 시대의 중요한 견해임을 알 수 있다.

 

子興輪縣令興鏡興發孫奠定略將軍訓練院習讀禮賓寺(시)主簿
아들 흥륜은 현령, 흥경,흥발이 있고, 손자 전은 정략장군 훈련원습독 예빈시주부였다.

 

日公後孫泰基以僉宗命抱狀(장)間關半千 請余文記之顧今天地飜覆父不父子不子喪不喪祭不祭者 往往接跡而惟能追遠祖而行祀壇之禮 可以振勵頹俗所感者 湥不敢以不文辭而遂爲之記
隆熙紀元後己丑六月 日
어느날 공의 후손 태기가 여러 종인의 부탁으로 관련된 문서 오백 장을 안고와서 나에게 문장으로 기술해 줄 것을 청하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세상이 바뀌어 부모가 부모답지 못 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고, 상례가 상례답지 못 하고, 제례가 제례답지 못하다. 이따금, 조상의 자취를 찾고 오로지 먼 선조를 추모하고자 제단의 예를 행하려는 이가 있으니, 가히 퇴폐해지는 풍속을 바로 잡으려고 힘쓰는 사람이라 여긴다.
감히 서툰 문장력을 가지고 잘 표현할 수 없어 사양하였으나 망설이다가 이렇게 기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