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골백년/톳골을지킨사람들

3. 25세 강대순 선조

주비세상 2009. 8. 3. 11:30

3. 25세 강대순 선조

 

 박사공파 25세인 강대순(姜大蕣 1900-1938 戶籍上 諱는 順福) 선조께서는 21세 되는 해에 마사에서 태어나신 안동 김(金德熙 15세)씨와 혼인하여 장남 유원과 차남 필원 두 아들과 아래로 딸 넷을 두셨다.

 

선조께서는 맏아들 유원을 조부의 슬하에 두고 둘째와 큰 딸들을 데리고 옹천 1동 굴록골에서 10여 년간 살았다. 선조께서는 궁핍하여 생활이 어렵게 되자 5년 여 동안 타지에서 가솔들을 위해 노력해 보았으나 여의치 않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작은 농토에서 보다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 선조께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알뜰히 농작물을 가꾸자, 이것을 본 이웃 사람들이 농사짓는 본보기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맏아들 유원이 약혼하던 해에 39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자 가솔들은 다시 톳골에 모여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선조께서 돌아가신 후 명당자리인 삼막골 밭에 유택을 마련하였고 1996년 92세로 돌아가신 배위 안동 김씨도 함께 쌍분으로 모셨다.

 

한편 차남 필원(泌遠)은 자(字)를 군심(君深), 호를 학서(鶴西), 택호를 서제(書齊)라 하였으며, 17세(歲) 되는 해에 영주군 평은면 평지마을에서 자란 순흥 안(安順香 16세)씨와 혼인하여 6남 1녀(유균, 수균, 성집, 동학, 유식, 유찬, 영하)를 두었다. 옹천 2동에 분가하여 톳골의 작은 농장을 경영하며 생활하였다. 도골 선풍의 귀공자 풍채로 한학을 좋아하여, 학문이 높고, 시문(詩文)에 능하며, 가례(家禮)에 밝아 문중 대소사의 모임에 자주 부름을 받았다. 젊은 시절 6년간 군복무를 하면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고 유엔군 부대와 한국군을 왕래하면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성품이 온화하고 성실하여 좁은 산골짜기를 개간하여 농작물과 특용 작물을 재배하는 등 농업 소득 증산에 열의를 보였으며, 틈틈이 익힌 이용 기술로 친척과 이웃 사람들에게 이발을 해주는 봉사 정신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장녀 분선은 안동인 김인수(金仁秀)와 혼인하여 영주에서 살림을 차렸고, 차녀 분나도 안동인 김양일(金良鎰)을 만나 마사로 출가하였다. 3녀 경분은 황새골의 안동인 권상운(權常雲)과 혼인하여 대구에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막내 사분도 의성인 김태현(金泰顯)을 만나 영주에서 생활 터전을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