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비세상 2009. 8. 3. 11:10

26. 혼인 풍속

 

 아이가 커서 성년이 되면 혼담이 오간다. 어느 지방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처녀 총각이 서로 만나 자유롭게 사귀는 자유 연애사상에 거부감을 느끼던 시대에는 혼기를 둔 처녀, 총각집 근처에 드문드문 낯선 사람이 나타나 물을 한 그릇 청하거나 길을 묻는 사람이 보인다. 틀림없이 혼담을 듣고 당사자 얼굴을 보거나 그 집 살림살이를 살피러 온 중매자이다.

 

중매자가 양가의 형편을 살펴 서로의 의향이 맞으면 신랑 쪽에서 청혼장을 보내고, 이에 신부쪽 부모가 허혼장(許婚狀)에 사성을 보내기를 요구하지만, 대체로 중매자가 쌍방의 허락을 받고 신랑쪽에서 사성을 바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사성(四星)이란 신랑의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를 말하는 것으로 사주(四柱)라고도 한다. 사주단자를 받은 신부측에서는 혼인 날짜를 받아 신랑쪽에 통지하는데 이것을 연길(涓吉)이라고 한다. 혼인 날짜를 통지받은 신랑측에서는 신부용 혼수와 패물(佩物), 그리고 예장(禮狀:婚書紙)과 물목을 넣은 혼수함(婚需函)을 보내는데 이를 납폐(納幣)라 한다. 혼수함을 보내는 신랑측이나 받는 신부측에서는 함을 그 댁 혼주나 수복이 많은 친척 어른이 의관을 정제하고 예를 갖추어 정중히 보내고 받는다. 톳골에서는 함진 애비가 오는 것을 보면 크게 대접할 준비를 하고 집 가까이 와서 심술을 부리면 노자(路資)를 주어 들어오게 한다. 그 만큼 정중히 맞으라는 의미이다.

 

이 당시에는 신부댁 마당을 혼례식장으로 사용했다. 아무리 서민이라도 혼인하는 날은 신랑이 벼슬한 사람만 착용하는 사모관대복(紗帽冠帶服)과 묵화(墨靴)를 착용하고, 신부는 머리에 화관족두리를 쓰고 연지곤지 찍고 사포(紗布)로 앞을 가리며, 비단으로 된 노랑저고리와 빨강 치마를 입고 화려하게 수놓은 활옷(袖衣(수의):소매에 손을 넣을 수 있는 옷)을 입는다.

 

신랑 신부의 가운데에는 초례상(醮禮床)을 놓고 암탉, 수탉, 쌀, 대추, 생율 그리고 대나무와 소나무 가지를 꺾어 화병을 만들어 양쪽에 놓는다. 양쪽에 병풍을 치고 신랑은 동쪽에 신부는 서쪽에 위치하게 된다(壻東婦西). 진행자가 식순을 적은 홀기(笏記)를 큰 소리로 외치면 혼례식은 시작된다. 전안례(奠雁禮)와 교배례(交拜禮)가 끝나면 혼례식은 끝난다.

 

신식 혼례를 마치면 예식장에서 바로 신혼여행을 떠나지만 옛날에는 혼인을 하고 신부댁에서 이틀 밤을 지낸 후 삼일 째 신랑이 신부를 가마에 태우고 신랑댁으로 온다. 신부가 탄 가마가 대문에 들어 올 때 가마꾼이 짚불을 걷어차거나 바가지를 밟는 등 잡귀를 떨치는 의식을 거치고 마당에 당도한다. 방에는 미리 그림병풍 앞에 두툼한 요를 깔아 놓고 신부를 기다린다. 이 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신부는 이곳에 다소곳이 앉아 마을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녀야 한다. 이날을 우귀일(于歸日) 또는 신행일(新行日)이라고 한다. 이날 신부는 준비해온 술과 안주상을 차려 시부모와 친척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는데 이것을 현구례(見舅禮)라고 한다. 지금은 예식장에서 폐백을 올림으로써 대행하고 있다.

 

혼례를 올리고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가풍을 익히는 신부는 몹시 힘들고 어렵다. 한 달쯤 지나면 친정 나들이로 보름 정도 휴가를 보낸다. 대체로 신랑이 함께 가서 처가의 어른들께 인사도 드리고 처족들과 화목을 도모하게 된다. 낮에 어른들께 인사를 다니고 나면 저녁엔 젊은이들이 신랑과 인사를 나누려고 모인다.

 

신랑이 처가 마을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낮부터 동네 청년들이 오늘밤 신랑에게 한턱 우려낼 작전을 짠다고 술렁인다. 초면 인사가 끝나면 하나, 둘, 밖으로 나가서 신랑을 매어달 도구를 감추어 들어온다. 고참이 눈짓으로 작전 지시를 하면 순식간에 두 발목을 동아줄로 묶고 시렁에 거꾸로 매달아 꼼짝 못하게 한다. 함께 있던 신부가 발을 동동 구르며 몸부림치며 풀어 주기를 애원하지만 어림도 없다. 마른 명태 한 마리를 들고 발바닥을 후리치면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부르게 한다. 시키는 대로 할 때까지 장인, 장모님께 술과 음식을 요구하도록 한다.

 

장인, 장모의 호칭이 익숙해지도록 하면서 몸으로 서로 어우러져 초면의 신랑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술과 음식으로 화합하는 이 풍습은 우리 톳골 지방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전해오는 아름다운 풍습이다. 간혹 지나친 행위로 신랑을 다치게 하거나 꼴불견의 장면이 매스컴에 보도될 땐 지각없는 사람들이 우리의 미풍을 더럽힌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