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화청궁
<중국여행기>
화청궁(華淸宮)
침어낙안 폐월수화(沈魚落雁 閉月羞花)라는 말은 중국인들이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네 사람의 여인을 극찬하는 문구(文句)이다. 역대 중국의 절세가인(絶世佳人)이었던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嬋), 양귀비(楊貴妃)의 미모를 서로 다르게 비유한 표현이다.
먼저, 서시(西施)가 강가를 거닐면 ‘물고기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려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린 채 물밑으로 가라앉았다(沈魚).’고 했고, 왕소군(王昭君)이 길을 가면 ‘하늘에서 날고 있던 기러기가 그녀의 미모
에 홀려 날갯짓하는 것조차 잊은 채 땅에 떨어졌다(落雁).’고 했으며, 초선(貂嬋)이 달맞이하러 나서면 ‘달도 부끄러워 구름 사이로 숨어버렸다(閉月).’고 하고. 양귀비(楊貴妃)가 정원을 거닐면 ‘꽃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羞花).’고 하니 과장된 표현이라도 가히 그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남성인들 이처럼 화용월태(花容月態)의 여인을 보았을 때 몸과 마음이 끌리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거늘, 군왕인들 곁에 둔 미녀의 향기와 자태에 어찌 평상의 마음으로 국정을 돌볼 수 있었겠는가?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을 나와서 점심 식사로 서안의 명물 교자연(餃子宴:만두) 열네 가지의 맛을 음미하고, 양귀비가 당 현종과 세기의 로맨스를 즐긴 온천지 화청궁(華淸宮)을 찾아갔다.
궁문(宮門)을 들어서니 가운데에 아담한 연못이 있고 전각과 누각들이 춘풍에 싹 틔우는 수목들 사이로 화청지 맑은 물에 아름답게 비춰진다. 현종과 양귀비는 이 수양버들 가지 늘어진 화청승지(華淸勝地)에서 밤마다 거닐며 연못에 비친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꿈결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화청궁 경내에는 양귀비가 홀로 목욕하던 해당화꽃을 닮은 귀비지의 해당탕, 당 현종의 전용 온천 욕실인 구룡전의 연화탕, 그리고 성진탕, 상식탕 등의 온천욕탕이 있다. 그리고 당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맹세한 장생전, 양귀비가 목욕을 한 후 머리를 말렸다는 관풍루와 비하각도 눈에 띈다.
화청지(華淸池)는 관중 여산 서북쪽 기슭에 자리한 온천지로서 역대 황제들의 별장으로 사용했던 휴양지이다. 건물은 모두 6문(門), 10전(殿), 4누(樓), 3각(閣), 5탕(湯)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시황 때 돌을 깎아 집을 만들어 명신들의 온천지로 썼고, 742년에 당 현종이 못을 만들고 탄천궁을 증축하여 화청궁이라 개칭했다.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열여덟 번째 아들 수왕(壽王)의 비였다. 현종의 며느리였던 셈이다. 무혜비(武惠妃)가 죽자 쓸쓸해하던 현종은 미모가 뛰어난 며느리 양옥환에게 마음을 두어 잠시 화산(華山)에 있는 절에 출가를 시켰다가 환속 시키는 과정을 거쳐 귀비로 삼게 된다. 불륜의 사랑이었지만, 그 불륜을 조장한 것은 다른 사람 아닌 그녀의 오빠 양국충이었다. 승상 양국충은 환관 고력사와 함께 현종이 화청지에 행차하는 일정에 맞추어 양귀비가 목욕탕에서 막 목욕을 끝내고 나오는 장면을 연출한다. 양귀비의 부끄러운 듯 발그레해진 얼굴과 야릇한 자태에 현종은 넋을 잃게 되고 이로써 두 사람의 정열적인 로맨스가 시작된다. 이때 양귀비의 나이 22살이었고 현종은 57살이었다. 양귀비가 남방에서 나는 ‘여지’라는 과일을 좋아하자, 관리를 급히 파견하여 신선한 과일을 구해오게 할 정도로 현종은 양귀비를 총애하게 되었다. 현종과 양귀비가 처음 만난이래 14년 동안 이곳에서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미인에게 빠진 현종은 정사는 뒤로 미루어 두고 사랑 놀음에만 젖으면서 연회를 베풀고, 시인들을 불러다가 그들의 사랑을 노래로 짓게 했다. 현종(玄宗)이 양귀비(楊貴妃)를 데리고 침향정 못가에서 목단을 보며 즐기던 중, 시인 이태백을 불러 명창 이귀년이 그 자리에서 부를 노래의 가사를 지으라고 명했다. 이때 이태백은 술에 만취되었으나 즉석에서 귀비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시 세 수를 지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청평조사(淸平調詞)’라는 시이다.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화상용) : 구름 같은 치맛자락, 꽃 같은 얼굴,
春風拂檻露華濃(춘풍불함노화농) : 살랑이는 봄바람, 영롱한 이슬일레라.
若非群玉山頭見(야비군옥산두견) : 군옥산 마루서 못 볼 양이면,
會向瑤臺月下逢(회향요대월하봉) : 요대의 달 아래서 만날 선녀여!
一枝濃艶露凝香(일지농염노응향) 한 떨기 농염한 꽃, 이슬도 향기 머금어,
雲雨巫山枉斷腸(운우무산왕단장) 무산녀의 애절함은 견줄 수 없네.
借問漢宮誰得似(차문한궁수득사) 묻노니, 한나라 궁궐에 비길 이 있을까?
可憐飛燕倚新妝(가련비연의신장) 비연이 새 단장하면 혹 모르리.
名花傾國兩相歡(명화경국량상환) 꽃도 미인도 서로 즐거움에 취한 듯,
長得君王帶笑看(장득군왕대소간) 바라보는 임금님 웃음도 가시질 않네.
解釋春風無限恨(해석춘풍무한한) 살랑이는 봄바람에 온갖 근심 날리며,
沈香亭北倚欄干(심향정배의난간) 침향정 북 난간에 흐뭇이 기대섰네.
• 군옥산(群玉山):중국 전설에 나오는 옥으로 된 산으로 신선들과 절세미인 신녀(神女) 서왕모가 살았음.
• 요대(瑤臺):옥(玉)으로 만든 호화로운 궁전.
• 비연(飛燕):미인이 많았던 한(漢)나라의 성제(成帝)를 유혹한 절세미인 조비연(趙飛燕).
• 무산녀(巫山女):초(楚)나라 양왕(襄王)이 단 한번 꿈에서 만나 정을 통한 후 구름과 비로 변해 양왕을
애 태우게 한 아름다운 무산의 신녀(神女).
양귀비가 해당탕에서 온천을 하고나와 고운 비단 자락을 몸에 두르고 저 높은 비하각에 올라가 짙푸른 여산에서 불어오는 실바람으로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유유자적(悠悠自適) 화청지의 풍경을 즐기고 있을 때, 연못을 거닐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현종이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더구나,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현종은 자기와 함께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비파를 타며 흡족하게 호흡을 맞추는 양귀비의 재능에 감탄하여 더욱 총애를 하였다. 연회가 열리면 즉석에서 이태백이 시를 지어 올리고, 현종이 비파를 치면 양귀비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으니, 이 환상의 흥취에 현종의 마음이 녹아내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현종과 양귀비가 목욕을 즐겼던 탕 안의 벽에는 두 사람의 달콤한 사랑의 장면들을 일일이 그림으로 그려 재현하고 있다. 앞마당에는 온천을 마친 양귀비가 여우 가죽을 걸치고 몸을 반쯤 노출한 채, 눈을 살포시 내리뜨고 요염한 자태로 천천히 욕탕에서 나오는 모습을 백옥으로 조각한 양귀비상이 서 있다. 통통한 몸매에 희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설부화용(雪膚花容)의 양귀비가 보라는 듯 다소곳이 걸어 나올 것 같다. 찾아온 많은 사람들은 물끄러미 양귀비의 풍만한 몸매를 훔쳐보고 있다가 다투어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을 찍으며 생전의 양귀비와 교감이라도 한 듯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그 뒤쪽에 양귀비의 향기나고 매끄러운 고운 피부를 만들어 주었다는 온천 샘이 흐르고 있어 관객들은 모두 손을 씻으며 양귀비가 된 듯 기뻐한다.
아름다운 여인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하듯 절세미인의 치마폭에 싸여 세월 가는 줄 모르던 현종은 제국을 다스려야하는 자신의 무거운 책무를 점점 잊어갔다. 급기야는 나라의 경제적 토대가 무너지고 군사적인 질서가 문란해지기 시작했다.
귀비의 그늘에서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휘두르던 오빠 양국충과 변방에서 세력을 키워온 타타르족 출신의 장수 안녹산(安祿山)의 충돌이 마침내 반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안사(安史)의 난'이란 일컬어지는 이 반란은 미인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 황제에 대한 반감이 한 몫을 하였음은 물론이다.
난리가 나자 황제는 귀비(貴妃)를 데리고 사천 지방 험한 곳으로 피난을 떠나던 중 장안의 서쪽 지방인 마외(馬嵬)에 이르러 황제의 총명을 흐리게 한, 양씨 집안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폭발한 신하와 군사들이 마침내는 양국충을 죽이고 귀비에게도 죽음을 강요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양귀비는 황제의 울부짖음도 아랑곳없이 길가의 어느 불당 배나무에 목을 매어 비운의 일생을 마치니 그때 나이 38세였다. 황제도 제위를 내어놓고 시름과 그리움으로 피난지의 세월을 보내다가 난이 평정되자 장안으로 귀환하여 몇 달 만에 양귀비의 뒤를 따름으로써 그들의 로맨스는 허무하게 끝을 맺고 만다. 죽은 양귀비에 대한 현종의 그리움을 백낙천은 장한가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夕殿螢飛思悄然(석전형비사초연) 저녁이면 날아드는 반딧불이에 그리움은 더해지고,
孤燈挑盡未成眠(고등조진미성면) 외로운 등잔불을 돋우느라 잠 못 이루네.
遲遲鐘鼓初長夜(지지종고초장야) 서서히 울리는 종소리에 밤은 더욱 길어져,
耿耿星河欲曙天(경경성하욕서천) 반짝이는 은하수에 동이 트려 하는구나.
鴦瓦冷霜華重(원앙와랭상화중) 싸늘한 원앙 기와 서리꽃 피어나니,
翡翠衾寒誰與共(비취금한수여공) 차가운 비취 이불 뉘와 함께 같이할까?
悠悠生死別經年(유유생사별경년) 아득히 사별하여 해가 다시 지나가도,
魂魄不曾來入夢(혼백부증래입몽) 영혼은 꿈속으로 찾아오지 아니하네.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래서일까? 어쩌면 양귀비는 비련의 주인공이라도 16년의 짧은 세월 동안 부귀영화 속에서 최고의 사랑을 받으며 한 세상 아름답게 살다간 여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때는 이 화청지가 낭만이 넘치는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로 가득 찼겠지만, 그 사랑은 그들의 사랑만큼이나 드센 허무와 쇠락을 불러왔으니, 아리따운 화청지의 맑은 물은 오늘날 눈물이 되어 가득 차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양귀비가 죽은 지 50년이 지난 806년 백낙천은 기이한 환상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들의 아름다웠던 사랑을 7언(言) 120구(句)로 된 대서사시 ‘장한가(長恨歌)’를 미려한 문체로 엮어내어 그들의 애절한 사랑을 만천하에 다시 태어나게 했다.
제l장은 권력의 정상에 있는 황제와 절세가인 양귀비의 만남과 양귀비에게 쏟는 현종 황제의 지극한 애정 등을 노래하였고, 제2장에서는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몽진하는 길에 양귀비를 어쩌다 죽게 한 뉘우침과 외로움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황제의 모습을 그렸다. 제3장은 환도 후 양귀비의 생각만으로 지새는 황제를 묘사했고, 제4장에서는 도사의 환술(幻術)로 양귀비의 영혼을 찾아 미래에서의 사랑의 맹세를 확인하게 되었으나, 천상(天上)과 인계(人界)의 단절 때문에 살아 있는 한 되씹어야 할 뼈저린 한탄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구구절절 애절함이 묻어나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臨別殷勤重寄詞(임별은근중기사) 이별할 때 간곡히 전할 말 부탁하였는데,
詞中有誓兩心知(사중유서양심지) 둘 만이 아는 맹세한 말 있었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석장생전) 칠월칠석 장생전에,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인적 없는 깊은 밤에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 비익조(比翼鳥):날개가 각각 암수 하나뿐이라 둘이 같이 붙어야 날 수 있는 새.
• 연리지(連理枝):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붙어 한 몸이 된 나무.
남녀 간의 사랑을 이렇게 잘 풀어 쓴 글이 또 어디 있으랴! 장한가는 무극으로 다시 각색되어 화청지에 무대를 꾸미고, 여러 전각과 여산 전체를 배경으로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공연이 화려하게 펼쳐진다고 한다. 여정을 일주일만 늦추었으면 이 멋진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화청지 입구 누각에 걸려있는 장한가 공연 안내 현수막 그림을 보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누각 한 벽면에는 초서로 쓴 ‘모택동 친필 장한가’가 동판에 영인되어 걸려있고 당대의 유명한 시인들이 현종과 양귀비를 찬양하여 바친 시와 함께 그들의 사랑을 담은 그림이 긴 동판에 새겨져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사랑을 맺었던 화청궁에서 그들의 찬란한 인생을 엿보고 꿈이라도 꾸고 싶어 가슴 벅차게 설레는 마음으로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온다. 그러나 아름다웠던 그들의 사랑은 순간이었고 영원한 행복의 꿈은 불행의 늪으로 빠져버렸다. 사람들이 갈구하던 영원히 아름다운 사랑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껴본다. 그 화려했던 로맨스의 현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내 발걸음이 왠지 가볍지 않고, 마음 한 구석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