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비글마당/흙살깊은골짜기<편지>

구제역으로 소를 매몰한 창강 아우님께

주비세상 2011. 1. 13. 11:19

 

 

 

 

구제역으로 소를 매몰한 창강 아우님께

 

 

 하늘도 무심하여라!

 엊그제 톳골에서 그 참담한 모습을 보고 대구에 돌아와서 우리 내외는 서로 마주보고 한숨만 쉬며 동짓달 그리도 긴 밤을 보냈다네. 내 마음이 이럴진데 당사자인 자네 마음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안동에서 구제역(口蹄疫)이 발생하였다는 뉴스가 나오던 날부터 걱정이 산같이 밀려와 하루하루를 가슴 조이며 지내고 있는데, 연일 TV에서 소와 돼지를 수 만 마리씩 매몰(埋沒) 처분한다는 보도에 망연자실했지만 아우님의 목장(牧場)은 무사하다는 소식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구제역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오히려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안동에서는 2차 감염이 발생하여 당국에서 방역(防疫)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인의 목장 출입 통제는 물론, 사료 공급 차량과 원유 운반 차량까지 차단하여 톳골 목장에서 매일 생산하는 우유를 웅덩이에 버려야 하는 실정이라니 상황이 매우 심각함을 느꼈네.

 

‘지금까지 잘 견디어 왔는데 끝까지 버티어야 할 텐데…….’

 멀리 있는 이 형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서 더욱 안타깝고 가슴이 아파 자나 깨나 조상님께 빌고, 부처님께 기도하며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매일 애지중지(愛之重之) 먹이를 주고 어루만지며 젖을 짜던 자네의 마음은 아마도 애간장이 다 녹았을 것일세.

 

 12월 22일 오후, 인천 누이동생으로부터 자네의 목장 젖소를 살처분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 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무엇을 어찌할 줄 몰라 이 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못하였다네.

‘세상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기어이 고비를 못 넘기는구나…….’

24일 저녁,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자네에게 전화를 했지만,

 “오늘 매몰 작업을 끝냈다.”

는 말에 어안이 벙벙하여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할 수도 없었네.

 다음 날, 형님 내외분과 우리 부부가 톳골을 찾았을 때, 축사 가득 한가롭게 꼬리를 저으며 노닐던 92마리의 얼룩이들은 어디로 가고, 텅 빈 우리엔 매서운

겨울바람이 정들었던 젖소들의 울음인양 서럽게 윙윙거렸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윤회(輪回)를 벗어날 수는 없다지만, 말 못하는 짐승으로 태어나 아낌없이 인간에게 이로움만 주고, 저렇게 불의에 떠나가 버리다니…….

 그들의 무덤 앞에 서니, 나 혼자만 잘 살겠다고 발버둥 치며 다투는 인간들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네.

 부디 아흔 둘의 선량한 영혼들이 편히 잠들어 이생에서 지은 선업(善業)으로 다음 생에는 더 좋은 생명으로 환생하여, 비명횡사(非命橫死)하여 누리지 못한 복을 마음껏 누리기를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네.

 

 창강!

 잘 아시는 대로,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한빈(寒貧)하게 살아오다가 선친(先親)께서 가업(家業)을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네. 우리 형제들 중에서 선친의 그 사업적 수완을 이어받은 사람은 유일하게 자네 창강뿐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네.

 10여 년 전, 처음 자네가 톳골에 목장을 지을 때,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혈혈단신(孑孑單身), 무자본(無資本)으로 억척스럽게 공사를 추진하던 모습, 그 굳은 의지와 강인한 결행(決行), 사업에 대한 냉철한 판단력과 열정은 우리 종반 누구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사업가의 탄생이었네.

줄곧 목장을 경영하면서 닥쳐오는 크고 작은 어려운 문제들을 원만하게 해결하면서 안동 낙우(酪友)들의 리더로 인맥을 넓혀 굳건하게 사업을 추진하여 왔으니, 이 형은 창강 같은 아우를 둔 것이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워 항상 우리 집안의 희망이라 여기고 있네.

 나는 창강이 이번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을 당하고도 굳게 일어섰던 일을 기억하고 있기에 아무리 어려운 재난(災難)도 극복하고 재기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네. 이 슬프고 괴로운 재앙(災殃)을 어디에 하소연하고,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온 나라를 휩쓸어 소와 돼지를 모조리 삼키고 간 하늘인들 원망해서 무엇 하겠는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찬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게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생각나네. 지금 이 어려움을 겪는 천재(天災)는 더 큰 복(福)을 주기 위해, 하늘이 창강을 시험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보네. 다만 시간이 조금 지연될 뿐이지 자네의 꿈은 더 크게 빛날 것일세.

 우리 집안은 여러 형제들이 있지만 모두 호구지책(糊口之策)에 여념이 없어, 어려움을 당해도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자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서운해 하질 말게나. 우리 형제들이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우애(友愛)는 그 어느 형제보다도 깊고 넓다네. 다행히 형님 내외분이 자네 곁에서 부모님 역할을 하고 계시니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모르겠네. 항상 감사하는 마음 잊지 말게나.

 

 무엇을 주고 무슨 말을 한들 창강의 텅 빈 가슴을 채울 수 있겠는가만, 우리나라 축산 가족들이 함께 당하는 고통이니,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건강을 챙겨 이 추운 겨울을 견디어 내년 춘삼월 앞산에 진달래꽃 붉게 필 때 다시 웃으며 시작하세나.

 창강 아우님! 힘내시게.

 

*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한약이라도 지어 드시라고

적지만 위로금을 동봉하네.

 

 

2010년 12월 26일

 

대구에서 둘째 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