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비세상 2010. 2. 24. 15:12

 

 

빈 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아서 그런지 나는 손에 무엇을 들고 다니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어릴 적 외가에 갈 때면, 어머니께서는 이것저것 챙겨서 이고 들고 그래도 모자라 어린 나에게도 짐을 지어주셨다. 아버지와 친척집을 방문할 때도 어김없이 보자기에 과일이나 채소가 아니면 곡식을 몇 가지씩 자루에 넣어 들고 집을 나서야했다. 어릴 때는 짐을 들고 다니는 것이 매우 부끄럽고 창피하게 생각되어서 간혹 길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얼굴을 붉히고 쳐다보지를 못했다. 그래서 어른들이 함께 어딜 가자고 하면 먼저 집을 나와 어른들보다 멀찌감치 앞서가다가 다시 불려와 짐을 들고 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는 일차 산업인 농산물이 물류의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농산물을 팔아야 돈을 장만할 수 있고, 그 돈으로 생필품을 구매하고 학비와 교례비로 충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골 오일장날이 오면 아침 일찍부터 팔 수 있는 온갖 농산물을 묶고 싼 짐 보따리가 마당에 가득하였고 그 짐을 장터로 운반하는 일을 늘 부모님과 함께 지겹도록 나는 해왔다.

 세상을 사는 일이 물류 아닌 것이 어디 있겠냐만 새처럼 날고 싶고 메뚜기처럼 뛰어다니고 싶은 어린 마음에는 맛있는 먹을거리가 든 보따리도 싫고, 배워야 산다는 책가방도 들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해질녘 시간을 자주 기다렸다. 이때쯤이면 짐 보따리 이동이 거의 끝나는 시간이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대부분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짐을 날라야할 일은 거의 없는 시간이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내리기 전, 맨몸으로 풀숲 길을 걸어보라. 낮과 밤이 교차되는 황혼에 전원의 노을을 받으며 오솔길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걸으면 발은 풍선처럼 가볍게 저절로 치솟고, 몸은 새털처럼 둥둥 날아오르고, 마음은 구만 리 하늘을 향해 펼쳐 오른다. 웃옷을 벗어던지고 나도 모르게 감격의 소리를 지르게 된다.

 인간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때가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다. 법정(法頂) 스님께서 느끼시는 무소유(無所有)의 희열도 이 느낌일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스님처럼 상유(常有)하지 못함이 안타깝다 하겠다. 모르기는 해도 스님은 물질적인 무소유를 넘어 번뇌(煩惱)의 무소유까지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종정 예하 법전(法傳) 스님도 법문에서 소욕지족(少欲知足)이란 말씀을 자주 하신다.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면 행복해진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것은 곧 마음의 욕심을 줄이게 되고, 욕심이 주어들면 번뇌도 줄어지는 이치이다.

 사람들이 집을 나설 때는 꼭 챙기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집 열쇠와 지갑, 그리고 휴대전화기이다. 열쇠는 가족이 각자 자유롭게 드나들어 언제 집이 잠겨 있을지 모르니 꼭 지참해야할 물건이고, 지갑은 주민증과 운전면허증, 그리고 각종 카드와 용돈이 들어있으니 빼놓을 수 없고, 휴대전화는 시계의 역할도 하지만 각종 정보와 연락 수단의 역할을 하니 현대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온천이나 사우나를 갈 때면 습관적으로 만 원짜리 한 장만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집을 혼자 나선다. 열쇠는 가족이 내가 돌아올 시간에 집에 있으니 필요 없고, 주민증과 면허증과 카드도 그 시간 동안에 사용할 일이 없으니 주머니 불룩하게 넣어갈 필요가 없다. 휴대전화기는 내가 연락할 일이 없으면 없어도 된다. 전화란 항상 상대방이 나를 필요로 하여 걸려오는 것이지 내가 필요하여 걸려오는 전화는 드물다. 그래서 가볍게 만 원짜리 한 장을 속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선다. 집사람은 걱정이 태산이다.

 “사람이 갑자기 친구도 만날 수 있고 무슨 일이 일어 날지도 모르는데 불안해서 어떻게 다니느냐?”

하면서 지갑을 가지고 다니라고 야단이다.

 부처님은 세상살이는 모두 인연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내가 심어 놓은 인(因)에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의한 연(緣)이 닿아 새로운 일이 생긴다고 하셨다. 세상사 모두가 나의 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황이다. 인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소유하고 있는 물건일 수도 있고, 자기의 생각(의식)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미리 그 인(因)을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가 내 마음 속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타(他)로 인해 받는 질곡에서 벗어난 마음의 자유로움, 그 평화의 희열을 맛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