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비세상 2009. 8. 2. 20:02

톳골 전체의 농지는 논과 밭이 반반 정도이다. 톳골못 아래쪽부터 황새골까지 골짜기 따라 정리된 논은 비교적 옥답에 속한다. 그 외 낮은 지대에 일군 논은 천수답으로 가뭄이 들면 밭곡식을 심어야 하는 논이다. 지대가 조금 높은 곳과 산비탈에는 밭을 일구어 놓았다.

 

1. 벼 재배

 

논에는 주로 벼를 심는다. 벼농사는 3월에 못자리를 시작으로 하여 아무리 늦어도 하지 전에는 모내기를 마쳐야한다. 모내기는 한 사람이 부지런히 심어도 하루에 한 마지기 반 정도 심는데 논농사가 많은 집은 하루에 수 십 명의 일꾼을 맞추어야 한다. 농가의 힘든 일은 <벼> 소가 큰 몫을 한다. 논갈이를 한 물 댄 논을 써레를 매운 황소가 한 배미씩 삶아나가면 못자리에서 찐 모춤을 띄엄띄엄 던져 넣고 모내기꾼이 들어선다. 논둑 양쪽에 선 두 아이가 못줄을 넘길 때마다 일꾼들은 분주하게 모를 꽂고 흙탕물이던 논은 어느새 파란 어린 모로 덮인다. 모를 심고 난 후 잡초인 피와 가래 등을 제거하기 위해 논매기를 두세 번 정도하는데, 억센 벼 포기 사이를 왕호미로 논바닥 흙을 긁어 뒤집는 일은 막걸리를 배불리 마신 구릿빛 농부의 신명나는 팔뚝이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힘든 농사일에는 농요(農謠)가 한몫을 한다. 목청 좋은 앞소리꾼이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메기면 뒷소리꾼들이 신이 나서 소리쳐 받고, 흥겨움에 논 한 뙈기를 순식간에 말끔히 매나간다.

 

처서가 지나면 들녘 빛이 누렇게 되고 벼이삭은 가을바람에 알알이 영글어간다. 벼꽃은 풍매화에 속하지만 꽃잎이 없고, 꽃받침도 없고, 오직 암술 하나에 수술 몇 개가 얇은 영(穎:이삭)을 벌리고 나온다. 그래서 벼는 꽃이 핀다고 하지 않고 출수(出穗)한다고 말한다.

 

벼 추수는 낫으로 벼 포기를 하나씩 베어 볏단지어 말린 후, 힘센 황소 등에 길마 짓고 걸채 매워 한 바리씩 집으로 운반하면 2인용 탈곡기로 벼 타작을 한다. 저녁 늦도록 탈곡을 마치고 곳간에 햇나락을 가득 채우는 주인의 얼굴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여든 여덟 번 손이 간 벼농사의 힘든 순간을 잊은 체 환한 너털웃음에 온 가족이 가슴 벅차한다.

 

이렇게 짓던 벼농사도 1970년대 후반부터는 정부의 농업 기계화 정책으로 어린모는 육묘장에 주문하고, 모내기는 이앙기(모 심는 기계)로 하고, 추수는 콤바인(수확기)을 불러 손쉽게 한다. 지금은 들녘의 흥겹던 농요와 훈훈한 대화는 어디가고 농기계 소리만 요란하다.

 

2. 밀, 보리, 조 재배

 

벼농사 다음으로 많이 재배하는 농작물은 보리와 밀, 그리고 조 농사이다. 밭에 주로 재배하지만 다랑논에도 이모작으로 보리와 밀을 심은 곳을 많이 볼 수 있다.

 

보리에는 겉보리(皮麥)와 쌀보리(裸麥)가 있다. 겉보리는 씨방 벽에서 분비되는 점액물질로 인해 익은 후에 껍질이 씨알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고, 쌀보리는 껍질이 씨알에서 잘 떨어지 <보리> 는 것이다. 보리(겉보리)와 밀은 가을철에 씨를 뿌리는데 늦어도 상강 전에 파종해서 겨울철 한파에 얼지 않아야한다. 밀, 보리밭에 서릿발이 성크렇게 부풀어 오르면 온 식구들이 나와 보리밟기를 하는데 보리 뿌리가 얼지 않도록 땅에 밀착시키는 일이다. 봄에 파종하는 보리는 쌀보리라고 한다.

 

보리밭 샛길을 숨바꼭질하면서 보리피리 불던 추억도 좋지만 유월 땡볕에 도리깨질하며 보리까끄라기를 뒤집어써야하는 보리타작 풍경은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등 따가운 추억이다.

 

밀은 보리와 모양도 비슷하고 농사짓는 방법도 같다. 밀을 수확한 뒤 곱게 빻아 체로 쳐서 하얀 밀가루를 큰 독에 꼭꼭 눌러 담아놓고 일 년 내내 음식을 조리할 때 사용한다. 톳골에서 밀로 만든 음식 중에 가장 많이 만들어 먹는 것이 국수이다. 거의 하루 한 끼 정도는 국수를 해먹는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큰 안반에 홍두깨로 밀어 실같이 가늘게 썰어 애호박과 열무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끓인 뜨거운 칼국수를 자배기(속칭:버지기)째 마당에 내놓고 사발에 나누어 퍼 담고 깨소금, 김 가루, 달걀지단 올려 양념간장 휘저어 먹으면 이마엔 땀이 흐르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일이 바빠 조리할 시간이 급하면 솥에 물을 먼저 끓이면서 바가지에 밀가루를 반죽하다가 손으로 뚝뚝 떼어 넣어 끓이면 수제비가 된다. 뜨거운 밀떡이 씹히는 구수한 맛도 괜찮다.

 

아이들이 입맛이 없다싶으면 밀가루에 애호박 잘게 썰어 묽게 반죽하여 밥솥에 함께 쪄내서 고추장 발라내는 화끈한 장떡 맛은 입맛을 획 돌려놓는다.

 

풋굿날에는 솥뚜껑 뒤집어 놓고 나물전 붙일 때 밀가루 엷게 개서 밀가루전을 붙이다가 삶은 팥 한 숟가락을 넣고 네모나게 싸내면 밀전병이 된다. 구수한 팥, 그리고 쫀득한 밀가루전의 맛이 들기름의 고소한 맛과 어우러져 맛을 보면 또 손이 간다.

 

지금은 식성이 변하여 젊은이들이 밀가루로 된 음식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먹는 밀가루 음식은 종류도 다양한 라면, 빵, 우동과 자장면, 피자, 과자류 등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대부분 밀가루가 외국에서 수입되고 이 땅에서 자란 우리 밀로 만든 식품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보리피리 불며 밀 보리 이삭이 물결치는 들녘을 걷던 정겨운 모습이 그리워진다.

 

이모작으로 논에 심은 보리를 수확하고 나면 늦심기 모내기를 하고, 밭에 심은 보리와 밀 골 사이에 조를 파종한다. 조 농사 중에서 가장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이 조밭솎기이다. 한여름 도시 사람들은 산과 바다로 피서를 떠날 때 톳골 사람들은 어른 아이 모두 모여 조밭솎기를 한다. 밀짚모자에 수건을 두르고 밭이랑에 쪼그려 앉아 소복이 올라온 가녀린 모종을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솎아 매 나아가면 뜨거운 지열에 발바닥은 숯불을 밟는 듯하고, 홍시처럼 익은 얼굴에서 비 오듯 흐르는 땀은 베적삼을 적신다.

 

늦가을, 추수를 끝내고 바쁜 틈을 타서 만든 도토리묵에 따끈한 조밥 한 그릇, 넓은 안반에 홍두깨로 밀어 만든 칼국수와 조밥 한 그릇의 궁합은 미식가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맛이다. 아이들은 조를 새의 모이로만 알고 있으나 톳골의 밭농사 중에서는 매우 소중한 곡식이다. 보리밥과 조밥은 요즘 웰빙 식품으로 쌀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으니 사람이나 곡식이나 때를 잘 만나야 귀하신 몸이 되는가본다.

 

3. 그 외 잡곡 재배

 

다음으로 이곳에서 많이 심는 곡물로는 된장, 간장, 두부, 청국장을 만드는 콩, 조보다 낟알이 조금 굵어 밥맛이 구수한 기장, 콩밭에 드문드문 뿌려 오곡밥을 짓거나 고량주를 만드는데 쓰이는 수수, 팝콘이나 뻥튀기 강냉이가 되는 옥수수, 해독을 시키기 위해 환자들이 먹으면 좋은 녹두죽과 청포묵의 원료인 녹두, 한 방울이면 동네가 고소한 참깨, 열매보다 깻잎으로 더 이름 높은 들깨, 그리고 팥, 양대, 강낭콩, 결명자,

율무 등은 일 년 동안 필요한 만큼 논밭둑이나 밭 가장자리에 한 두 이랑을 심어 길러왔다.

 

톳골에서 가을 추수하는 모습은 분주하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곡식을 탈곡하여 깨끗한 알곡식만 모으기 위해서 손으로 돌리는 풍구라는 기구를 사용한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은 콩,팥류나 깨류를 추수할 때는 원시적인 방법을 써왔다. 저녁 때 쯤 바람이 일면 삼태기나 바가지에 쭉정이와 티끌이 섞인 곡식을 담아, 키보다 높이 들고 바람의 방향을 비켜서서, 물줄기처럼 흘러내리면 토실토실한 알곡만 발아래 소복이 모이고 쭉정이는 바람 따라 연기처럼 저만큼 날아가 흩어진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한 사람이 하는 방법으로 키질이 있다. 넓죽하게 생긴 키에 곡식을 담아 위로 곡식을 치켜 올리면 껍질은 밖으로 날아가고 깨끗한 곡식이 안쪽에 모인다. 이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다.

 

두 사람이 하는 일로는 부뚜질(風席질)이 있다. 방에서 사용하는 돗자리를 가져와서 반으로 접어 두 발 사이에 끼우고 양끝을 긴 막대로 말아 쥐고 바람을 일으키면, 또 한 사람은 그 앞에서 쭉정이 섞인 곡식을 흘려 내린다. 가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톳골의 추수 풍경 중의 하나이다.

 

4. 구황 작물과 섬유 작물 재배

 

구황작물(救荒作物)인 메밀, 고구마, 감자는 가뭄이 들어 하지까지 모내기를 못하면 논에 벼 대신에 심어 기근에 대 <메밀꽃> 비하였으나 지금은 특용 작물로 재배하여 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은 아니지만 2005년부터 톳골에서 서쪽으로 멀리 보이는 학가산 기슭 신전동 일대에 안동시 시책으로 메밀꽃 단지를 조성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의식주를 자급자족해야 하던 시절, 톳골에서 필수적으로 재배하던 섬유 작물로 대마목화가 있다.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 안동포(삼베)의 작업은 이곳에서도 해마다 해야 하는 일상의 길쌈이었고, 고려 말 공민왕 때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구해 오신 목화도 심어 면제품(무명)을 만드는 일,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농사일이다.

 

5. 채소 재배

 

채소류는 배추, 무, 양배추, 상추, 파, 부추, 시금치, 유채, 미나리, 토란, 당근, 우엉 등을 재배하여 끼니마다 국을 끓이거나 김장을 하거나 반찬, 전, 무침으로 입맛을 돋우었고, 양념으로 사용하는 고추, 마늘, 생강 등도 가꾼다. 밭둑이나 길섶에 호박을 심고, 담 밑에 박을 심어 올리고, 밭 갓이랑에 가지, 오이, 수박, 참외, 토마토 등도 가꾸어 왔다. 보통 일 년 동안 먹을 만큼 가꾸어 왔으나 농가의 소득을 올리려고 파, 고추, 마늘, 무, 배추, 상추 등을 집중적으로 재배하는 사람도 자주 본다.

 

6. 약초 재배

 

톳골에서는 약초를 재배하는 밭을 자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황금, 황기를 재배하다가 나중에는 지황, 도라지, 작약, 독활을 재배하였고, 지금은 산약(마)을 많이 재배한다. 특히 산약은 80년대 초부터 안동 북후 농협에서 마를 원료로 하는 마 음료와 마 분말 제품을 제조하는 공장을 건설하여 전국적으로 호평을 받자, 북후면 사람들이 마를 더 많이 재배하게 되었고 안동시에서는 이 일대를 마 재배 특구로 지정하였다.

 

위장 질환에 특효인 는 무를 깎아 먹듯이 날 것으로 먹어도 좋고, 밥 위에 익혀 마 밥을 해도 맛있다. 특히 떡국을 끓일 때와 닭볶음을 할 때 함께 넣어 조리하면 잡내가 없어지고 마의 전분 성분과 어우러져 산듯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7. 과일 나무(果樹)

 

봄이 되면 톳골은 화려한 무릉도원이 된다. 복숭아, 살구, 자두, 앵두꽃이 골짜기 마다 어우러져 발길 옮기는 곳마다 꽃이요, 눈길 닿는 곳마다 꽃이다. 꽃 속에 저 멀리 보이는 초가는 꽃대궐이 아닐 수 없다.

 

단오절이 가까우면 빨간 앵두가 가지마다 조롱조롱 터질듯 매달려 새콤달콤한 맛을 풍기고, 사과와 배, 밤꽃도 희뜩희뜩 피기 시작한다. 네모난 왕관처럼 생긴 흰 감꽃이 떨어지면 강아지풀 이삭 뽑아 조롱조롱 꿰어 말린다. 입이 궁금할 때 입에 넣고 씹어보면 떫은맛은 사라지고 깊숙한 단맛이 입안에 감돈다. 반질반질한 잎 사이에 연둣빛 대추꽃이 좁쌀같이 묻어 피면 어느새 노랗던 살구는 지나가고 진하게 익은 자두가 먹음직스러워진다. 복숭아도 홍조를 띄기 시작한다. 옛날에는 복숭아빛 얼굴과 살굿빛 살결을 가진 사람을 미인으로 뽑을 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아름다운 과일이다.

 

조상의 제사상에 반드시 올라야 되는 과일이 흔히 조율이시(棗栗梨柹)라고 말하는 대추, 밤, 배, 감와 사과이다.

 

감나무와 대추나무는 집 근처나 밭둑에 심어 주택과 어울리는 조경수 겸용으로 많이 심어왔다. 빈 골짜기에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보이면 아마 이곳이 사람이 거쳐하던 집터였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감나무 잎이 서리를 맞고 우수수 지고나면 가지마다 주먹만 한 감이 주저리주저리 탐스럽게홍시가 되어간다. 짙푸른 가을 하늘에 빨간 홍시가 매달려 하얀 뭉게구름을 만나고, 그 아래 두툼한 감나무잎이 부푼 억세꽃 사이에 걸려 비비적거리는 풍경은 톳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을 풍경이다.

 

감을 깎아 초가지붕 위에 발을 깔고 두 주일 이상 서리를 맞추어 말려야 제사상에 올리거나 수정과를 만드는 맛있는 곶감이 된다. 지붕 위에 말릴 때의 반 건시 맛은 마른 곶감 맛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알맞게 건조된 껍질이 고들고들하게 씹히는 맛, 부드러우면서 꿀맛을 내는 감속의 육질 맛은 남몰래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별미이다. 지붕 위에 널어놓은 곶감이 밤새 하나 둘씩 줄어드는 것은 어찌 도둑고양이 짓이겠는가!

 

밤나무는 안석골 뒷구렁을 둘러싼 능선에 빼곡히 우거져 있었고, 웃톳골 앞쪽, 아랫톳골 골짜기에도 커다란 밤나무가 십여 그루 자라고 있었다.

 

추석 무렵이 되면 늦잠 자던 아이도 새벽에 눈 비비며 올라가 주머니마다 알밤을 가득 채워 이슬 젖은 옷자락을 끌며 내려온다. 아이들이 생밤을 먹을 때 껍질을 벗기고 떫은 보늬를 앞니로 벗기는데, 이 때 입술에 묻은 탄닌 성분이 찬 공기에 굳어 입술 가장 자리가 벌겋게 부풀어 올라 흉해지는 경우가 있다.

 

배나무는 한 두 그루 집 근처에 심은 곳이 있고, 사과나무는 웃톳골, 아랫톳골, 삼막골, 큰톳골, 명지 바위골에 과수원을 조성하여 많이 재배하고 있다. 사과는 톳골의 농가 소득을 올리는 훌륭한 수입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호두나무와 포도나무는 집 근처 밭둑이나 집안 뜰에 한 두 그루 심어 놓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