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佛敎)/불교상식

4.色卽是空 空卽是色이란?

주비세상 2022. 12. 6. 13:37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무슨 말일까?
  직장에 다니던 시절, 어느 식당의 벽에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쓰인 족자의 한자(漢字) 구절을 보고, 나는 그 뜻이 몹시 궁금하였다. 그래서 함께 간 선배들 중에 나이 좀 드신 분 곁에 가서 슬쩍 말을 건네도 불교 경전의 구절이라는 말만 할 뿐 속 시원한 해석을 듣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한국불교대학에서 불교 기초 과정을 배울 때 이 구절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글귀는 불경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첫 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문)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한글) 사리자여, 물질이 허공과 다르지 않고 허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아서, 물질이 곧 허공이요, 허공이 곧 물질이며, 감각, 지각, 의지, 계속되는 생각, 최후의 인식도 그러하느니라.
‘色卽是空 空卽是色’ 을 직역하면 ‘색은 곧 공이고, 공은 곧 색이다.’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의 논리적 비약에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뜻은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색은 물질, 공은 허공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면 ‘물질이 곧 허공이요, 허공이 곧 물질이다’이다.
물질이 어떻게 허공과 같고, 허공이 어떻게 물질이라 할 수 있는가?
앞부분의 ‘色不異空’은 ‘色卽是空’과 같은 말이고, ‘空不異色’은 ‘空卽是色’과 같은 의미이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色卽是空’은 ‘그 모습(色)은 실체가 없어서(空), 모양을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空卽是色’은 ‘볼 수 없는 것(空)이 또한 모습으로 눈에 보이는 온갖 것(色)들이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나는 의문이 간다. 색(色)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인데 실체가 없어서 공(空)이라니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은 모두 여러 요소들의 집합체이다. 예를 들면, 한 채의 집은 나무 기둥과 흙담과 지붕의 기와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요소의 집합은 있으나 ‘집’이라는 실체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공(空)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의 핵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는 모든 원자는 핵을 갖고 있고 그 주변을 전자들이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데, 핵은 원자 지름의 10만 분의 1에 불과하여 물질의 99.999%는 비어있음을 실험으로 증명하고 “물질은 텅 비어있다.”라고 주장하였다. 또, 현대 과학에서도 소립자를 가속하여 생긴 쿽(quark)을 재 충돌 시키니 코스몬(cosmon)으로 빛이 되어 사라짐을 확인했다(상대성원리 E=MC²). 즉 어떤 물질이라도 분해하고 분해하면 마지막에는 흔적 없는 에너지로 변하여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공(空)이다.
이 세상,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떤 물질도 가화(假化)의 존재가 아닌 것이 없다. 나아가서 정신작용인 감각, 지각, 의지, 계속되는 생각, 최후의 인식(受,想,行,識)도 역시 그러하다(亦復如是)라고 했으니 사람은 공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인식되는 모든 것의 실체가 있다고 착각하며 살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그러면 공즉시색(空卽是色)은 무슨 말인가? 빈 허공이, 곧 볼 수 있는 물질이라니 무슨 말인가?
공(空)이란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이 아니라, 물질이 분해되어 에너지 상태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항상 조건이 주어지면 새로운 생명이나 물질이 탄생활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크게 말하면 우주의 빅뱅(big bang)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 들어있는 이런 허공의 세계를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표현한다. 허공인데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있어 조건이 맞으면 무언가 생성될 수 있는 상태이니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색즉시공이 공즉시색이요, 공즉시색이 색즉시공이 되는 것이다. 즉,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요, 없는 것이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空)이다.
이것은 세간(世間)법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 즉 오감에 의한 인식 작용을 실상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쉽게 인식 전환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불교는 출세간(出世間)법으로 인간의 본래면목을 참구하는 심법(心法)이기에, 이 공(空)이라는 불교 핵심 사상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공부를 해야 하지만 이해를 넘어 실질적인 공의 세계를 체득하려면 시절인연을 만나 깨달음(道)에 이르러야한다고 한다. 여기에 이르면 번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은 말이나 글이나 어떤 형상으로도 표현할 수 없고 어떤 이름을 붙일 수도 없다고 한다.

석거모니 부처님은 여기에 이르고 보니 모든 사람은 이미 이곳에 살고 있는데,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색,수,상,행,식을 익혀 굳어졌기에 세간의 삶을 진리인 줄 착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인간을 깨달음(道)에 이르게 하려고 팔만대장경의 방편 설법을 하셨다고 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도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되어야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이다. (주비세상)